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2부 4장 자운영 한 송이 꺾어 들고
| ▲ <삽화=류상영> |
<둥구나무를 생각하는 꼬막네>
꼬막네가 천천히 눈을 뜨고 윤길동을 향해 돌아앉으며 단정을 짓는 목소리로 물었다.
"학산 사람치고 우리 동리 둥구나무 있는 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거기서 자꾸 해꼬지를 하고 있구먼."
"내 참 별 잡스러운 말을 다 듣는구먼. 사람도 아니고 둥구나무가 워티게 사람을 해꼬지 한댜."
윤길동은 꼬막네를 빈정거리기는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향숙이가 둥구나무 고사 지내는 날 처음 증세를 보였다는 것이 떠올라서 말과 다르게 굳은 얼굴로 꼬막네의 눈치를 살폈다.
"그 둥구나무에 젊은 귀신들이 살고 있어. 그 귀신들이 승질 난 것이 틀림읎구먼. 원래 목신木神한테 살을 맞으믄 그 즉시 즉사하는 벱여. 그 둥구나무에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한 날 동시에 목 메달려 죽었잖여. 둘 다 총각이구먼. 쇠라도 녹일 나이에 목이 죄여 죽었응께 여간 원한이 많겠어. 예! 장군님, 잘못했나이다. 죽은 목숨은 죽은 목숨잉께 극락으로 보내 주시고, 산 사람은 산 사람 목슴잉께 살려 줘유. 예! 장군님, 나이가 많은 것도 아뉴. 아직 피지도 않은 꽃몽우리에 불과한 청춘잉께 지발 은혜를 베풀어 주슈. 예! 장군님 지발 산 목숨 굽어 살펴 주소서. 최영장군님은 틀림읎어! 거기서 죽은 귀신들이 딸내미한테 붙어서 장가 보내 달라고 괴롭히고 있능겨. 거기서 목 메달아 죽은 청춘들이 있지?"
갑자기 사례가 들린 것처럼 몸을 움찔움찔 거리던 꼬막네가 윤길동을 바라본다. 눈빛으로 윤길동의 가슴을 찌르는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했다.
"이……있기는 하지만 그……그 사람들은 우리집 식구가 아녀. 일가도 아니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란 말여. 워티게 갸 들이 우리 향숙이한테 붙었다능겨."
"내가 아까 뭐라고 했남? 부석에 불을 때지 않고는 절대로 굴뚝에서 연기나 나지 않는 벱여. 일가친척이 아니라믄 그 청춘들이 죽는데 이 집 대주가 한 부조를 한 모냥이구먼."
"한 부주를 하다니, 갸 들하고 난 티끌만큼도 유감이 읎었어. 근데 왜 해필이믄 우리 향숙이댜, 그 이쁜 향숙이가 먼 죄가 있다고……"
윤길동은 꼬막네의 점괘에는 놀라지 않았다. 웬만한 무당들 치고 점을 볼 때 미래를 예측하는 건 오대 오대지만 과거를 알아맞히는 능력은 팔구십 프로다. 꼬막네도 학산면내 에서는 소문난 무당이라 그 정도는 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가슴이 아픈 것은 꼬막네의 점괘가 정확한 만큼 향숙이가 신병이 걸렸을 확률도 정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영장군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는 것은 아녀. 하지만 유난히 잘 맞추시는 날이 있어.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란 말일시. 분명히 억울하게 죽은 청춘들하고 이집 대주하고 먼 상관이 있는데……"
꼬막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당을 향해 다시 돌아앉았다. 예! 장군님, 장군님 불쌍한 청춘들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유. 예! 장군님! 하고 중얼중얼 거리는 목소리로 최영장군을 불렀다.
지발, 우리 향숙이 좀 보살펴 주셔유. 죄가 있다믄 지가 죄가 있지 우리 향숙이는 암 죄도 읎슈.
윤길동은 슬그머니 피우던 담배를 눌러 끈다. 제단에 앉아 있는 최영장군의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콱콱 막히는 슬픔을 짓누르며 자신도 모르게 간절하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비봉산 어둠골에는 토끼굴이라는 굴이 있다. 토끼가 살 정도의 작은 굴이 아니라 일정시대 때 수정을 파내가 위해서 발굴을 하다 중단을 한 길이 오 미터 정도의 작은 굴이다. 굴 안에는 수정을 캐내기 위해서 시험적으로 파 본 작고 큰 여러 개의 구멍들이 많았다. 그 굴에 토끼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토끼굴이다. 순배 영감의 아들 형제를 찾아서 밤을 낮 삼아 꼬박 이틀 동안 비봉산 구석구석을 헤매던 날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