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의 대하 장편소설 '금강'
2부 4장 만세 삼창에 술이 석잔<181>
| ▲ <삽화=류상영> |
"그건 너나 먹어. 야 들은 난중에 또 해믄 됭께."
철용네가 철재의 밥 위에 있는 계란부침 조각을 재빠르게 철용의 밥 위에 얹어 주며 철재에게 눈치를 줬다.
"아녀, 서울 사람들은 맨날 달걀하고 밥 먹는댜.
"누가 그라는데?"
철준이 밥을 먹다 말고 철재에게 물었다.
"우리 형 서울 간다고 항께 인자가 그러드라. 서울 사람들은 맨날 쌀밥만 먹응께, 철용이 오빠도 인제 팔자 폈다고."
"쯔쯔, 인자가 니 친구여? 너하고 같은 학년이여?"
철용네가 철재의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인자는 이학년 이잖여. 나는 오 학년이고."
"어짜믄 너는 니 동생인 철준이보담 생각이 읎냐? 그정도믄 됐응께 그만 지껄이고 어여 밥이나 처먹어."
철용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철재를흘겨보고 나서 계란부침 접시를 철용이 밥그릇 앞으로 아예 옮겨 놓았다.
"저, 저 못난 놈 꼴 좀 보라지. 장에 내다파는 강아지만큼도 못한 놈이구먼."
철용네는 해가 바뀌기 전부터 보리밥이나 보리죽만 먹었다.
그런데도 철용의 굳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쌀이 섞인 밥을 먹어도 밥맛이 없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모두 아침을 먹으러 갔는지 둥구나무 거리는 비어 있다. 박태수 집 앞에서 중학교 교복바지를 입고 세수를 하는 상규의 모습이 보인다. 코끝이 짠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입술을 깨물며 정지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밥을 지은 가마솥 뚜껑은 아직도 뜨끈뜨끈하다. 뚜껑을 열자 숭늉의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이놈의 자식이 서울로 가믄, 누가 이릏게 좋은 숭늉을 떠다준댜."
밥먹고 숭늉이나 지대로 마실 수 있는지. 하는생각이 들면서 알맞게 끓어 갈색으로 변한 숭늉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녀, 중핵교 나왔다고 죄다 잘먹고 잘 사는 거는 아니잖여. 세상사는 거는 저 할 탓이여. 요새는 기술자가 최고라고 하잖여. 외려 일찍부텀 기술을 배우는 거이 더 빠를 수도 있어."
철용네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말끔히 닦았다.
그래도 행여 먼 길을 떠나는 철용의 눈에 눈물자국이 보일 것 같아서 코까지 휑 풀고 나서 숭늉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김춘섭은 숭늉을 마시고 여느 날처럼 방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봉초를 말아서 입에 물고 창호지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학교에 갈 필요가 없는 영숙이는 밥상에서 물러나 아랫목 벽에 기대고 철용을 바라본다.
서울에 갈 철용은 윗목 벽에 기대고 앉아서 아랫목위에 있는 벽장문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늘은 형 서울가는 날잉께 암말도 하지 말고 그냥 가. 형한티 서울 가서 잘 있으라고 인사나 하고 가란 말여."
철용네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철용이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린다. 철재와 철준이 학교 갈 준비를 하기위해 윗방으로 건너가는 등 뒤에 대고 말했다.
"형, 꼭 편지햐. 그람 네가 답장해 줄팅게."
철재는 철용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 윗방으로 갔다.
"형,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몸 조심햐. 알겄지?"
철준은 철재보다 어른스럽게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 사는 거는 서울이나 여기나 매 한가지여. 저만 열심히 일을 하믄 얼매든지 성공을 할 수 있다, 이거여. 그랑께 니 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기술을 배워야 하능겨."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