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면허 있습니까?

2010-02-11     이진영

아들로 태어나면 남자이고 남자는 남성으로 성장하며 남성은 결혼하여 남편이 된 후 거의 저절로 아버지가 된다.

한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대를 이으며 인류의 역사를 써 가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일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여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로서 건강하게 서는 것인지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전에는 그래도 왜곡된 것이 많기는 하지만 가부장제 아래에서 나름대로 아버지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제는 그 역할이 매우 애매해졌고 더 나아가 버려야 할 켸켸묵은 구습으로 치부되고 있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아버지는 자녀와의 접촉 시간이 이처럼 적어도 되는 것인가. 아버지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육에 무관심해도 되는가. 자녀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힘들어 하는지 몰라도 되는가. 자녀의 장래는 아내에게 다 맡기고 뒷짐만 지고 있어도 되는가. 학교는 아버지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지역사회는 아버지들이 존재하지 않는 가정을 더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국가는 아버지들을 바르게 세워 백년대계를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의 기초는 가정이다.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다. 아버지가 바로 서지 않으면 가정이 잘 될 수 없고 가정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와 국가가 잘 될 턱이 없다. 이게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도 직장생활이라는 명분으로 또는 돈 버는 기계로 아버지들은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버지들은 어떻게 해야 건강한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인지 배워 보지도 못한 채 친구나 선후배에게서 왜곡된 남성상을 배우고 있으니 가정에 바람 잘 날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흔한 자동차를 타려고 해도 면허를 따야 하는데 아버지 면허도 없이 아버지가 되었으니 안전사고 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역기능 가정이 60%에 달하고 있다는 통계다. 이제는 국가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바른 아버지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가정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퇴폐 문화의 범람, 흔들리는 결혼관과 부부상, 부모의 아픔 때문에 방황하는 자녀들, 깊은 상처를 안고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폭력으로 폭발하는 자녀들, 사고자로 전락해 버리는 이들로 인해 엄청나게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과 혼란 등은 바로 우리 가정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가정의 문제이며 가정의 문제는 곧 아버지의 문제라는 인식이 타당한 근거이다.

아버지교육을 해야 한다. 충청북도교육청이 이의 중요성을 알고 지난 해부터 아버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어떤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아버지로 자녀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나는 어떤 남성으로 살고 있으며 아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건강한 아버지는 어떤 것인지,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지 등을 4주 동안 배운다.

강의도 듣고, 조별로 서로의 가정생활을 진솔하게 털어 놓으며 격려해 주고, 아버지와 아내와 자녀에게 편지를 쓰며 인생의 앞부분을 반성하고, 가슴깊이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일대일로 식구들과 데이트를 하면서 사랑스런 20가지 이유를 읽어주고, 아내와 자녀의 발을 씻겨주면서 진정으로 낮은 자세의 섬기는 모습을 배우며, 수료 하는 날에는 식구들 앞에서 순결서약을 하고 면허증을 받는 프로그램이다.

2009년 한 해 운영으로 89%의 만족도를 얻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내용에 아버지들이 강한 충격과 도전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강하기만 해 보였던 남성들이 진한 눈물을 흘리며 인생의 후반전을 다시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충북의 모든 학교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넓은 가슴으로 아내와 자녀를 안아주는 사랑의 광경을 상상한다. 아버지 면허를 땄다는 자랑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 이진영
충북도교육청 장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