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실과 현실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2020-09-01     충청일보

[충청의 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오늘도 태양은 다시 새롭게 떠올랐다. 새벽은 검은 밤의 그림자를 하얗게 태워버리고 모든 자연의 색을 드러낸다. 근래 몇 년 동안 요즘같이 파란 하늘을 느껴 본적이 드문 것 같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얇게 드리워져 있는 청정의 커튼은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임을 느끼게 하는 데 손색이 없다. 그런 하늘의 상황을 전하는 일기예보는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신뢰를 담보로 정보를 제공한다.

며칠 전에는 여름 끝자락 하늘이 시꺼먼 구름으로 덮이더니,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를 내리 꽂았다. 아직은 더운 열기로 한껏 달구어진 대지 위에서 빗방울이 미친 듯이 대지 위에서 파닥거리며 튀어 올랐다. 요사이는 기상청도 어찌할 수 없는 난감한 일들이 벌어진다. 작은 지역에 폭우로 내리는 비를 예측하는 것이 실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언론도 기상청만큼이나 곤란한 지경에 처한 듯하다. 언론이 내어 놓는 목소리가 기상청만큼이나 예측불가한 일들에 대하여 신뢰성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원망하랴! 정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언론의 날씨는 일기예보와 아주 유사하여 변화무쌍한 것을! 그 혼란스러움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설사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구성원들에게 제공한다 한들 구성원 각자가 느끼는 날씨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처해진 상황이나 바라다보는 관점에 따라 상황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 매체는 매순간 많은 양의 정보를 쏟아 붓는다. 거의 가치 없는 수준에서부터 목숨과 같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진실은, 거짓이 아닌, 왜곡이나 은폐, 또는 착오 등의 잘못된 정보를 모두 제거했을 때에 밝혀지는 바를 말한다고 한다. 매 순간 접하는 많은 정보에서, 이러한 진실이라는 해석도 잘못된 정보의 제거 정도(?)의 함수라고 한다면 진실을 담은 정보는 얼마나 될까?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한다. 또한 언론매체에서 생산되는 정보가 진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역설적으로 국민은 진심으로 진실을 알고 싶어 할까? 진실이 불편한 존재일 경우에는 진실이 아닌 각색된 정보를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진실은 개인이 느끼는 날씨처럼, 그저 다양한 형태로 이해되고 해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질적으로는 진실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그 진실이란 존재는 국민 각자가 처하여 있는 상황에 따라 또 다시 해석 될 필요성이 존재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국민 각자가 처한 상황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익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현실에 기반을 둔 진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만약에 진실이 각자에게 유일한 존재라면, 과연 우리는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가을이다! 기상청은 오늘의 청주날씨는 오전 9시에 30%의 강수확률이 있고 초속 1미터의 바람 불고 습도는 70%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내가 바라 본 하늘은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별로 불지 않는다. 구름도 돌지 않는 하늘에는 진실과 현실의 괴리에 멍들은 하늘만 퍼렇다.

진실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존재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현실이 진실보다 빠르고 강렬하게 삶의 피부에 와 닿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 또한 결코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또한 현실이다.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에 들고 나온 우산이 낯 뜨겁다. 현실을 떠난 진실만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진실만이 모든 것의 답이라고 외치는 것 또한 현실을 외면한 독백일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진실과 현실 속에서 어디쯤에 있어야 하는가? 우리가 올려다보는 가을 하늘이 어지러운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