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슈 비워지고 라파엘 날아오르다

2020-12-23     충청일보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4주간의 대림절 끝에 성탄절이 온다. 성탄의 신앙은 온 우주의 주재자가 비천하고 연약한 자를 보살펴 존귀하게 높이고자 몸소 이 낮은 땅에 지극히 연약하고 겸손한 아기의 모습으로 임하였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미셸 투르니에의 단편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성탄절 이야기’에서는 라파엘 비도슈라는 피아니스트의 성(姓)과 이름이 삶으로 드러나는 극적인 방식으로 성탄의 기적을 들려준다.

작품은 “비도슈라는 성으로 불리면서도 세계적인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비도슈가 왜?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텐데, 비도슈는 프랑스어에서 ‘질이 안 좋은 고기’라는 뜻의 명사다. 하필 ‘질이 안 좋은 고기’라니! 아닌게 아니라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성으로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비도슈 부부도 무의식적으로 “가장 가볍고 가장 선율적인 대천사의 보호 아래” 두어 아들의 운명을 ‘비도슈’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는지 아들의 이름을 라파엘이라 지어준다. 어린아이 때 비도슈는 지적, 감성적으로 뛰어난 피아노 신동으로 바흐의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 연주로 감동을 선사하던 창백한 얼굴에 귀족적 풍모를 풍기는 ‘라파엘’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아이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연습에 짓눌린 그는 고르지 않은 앙상한 얼굴, 튀어나온 눈, 돌출된 턱, 두터운 근시 안경으로 ‘비도슈’가 되어간다. 이후 베네딕트와 약혼을 하고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를 연주하던 행복하고 숭고했던 몇 년 간 ‘라파엘’이 되지만 생계를 위해 지하 나이트클럽에서 어릿광대짓에 ‘상스러운 싸구려 상품’ 반주를 하면서 그는 다시 ‘비도슈’가 된다.

그런 그에게 성탄절 전야 마지막 공연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그가 어릿광대 분장으로 실패한 예술가를 연기하며 마지막 연주를 할 때 피아노가 폭발하며 그 안에서 싸구려 햄, 크림 파이, 줄줄이 소시지들, 희고 검은 순대가 쏟아져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 명상에 잠겨 부드러우면서 열정적으로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를 연주하자 비웃음은 그치고 ‘천상의 아름답고 감미로운 영적 환희가 찾아들면서 피아노에서 어두운 커다란 꽃송이가 서서히 피어나고, 오래 전부터 그가 완전히 비도슈가 되지 않게 지켜주던 대천사 라파엘이 피아노 위로 날아오른다.’

분장 때문에 안경을 벗은 그의 근시 눈에 비친 이 환상적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각 독자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비천함의 바닥을 치려던 공연의 마지막 순간, 그에게서 ‘비도슈’가 비워지고 ‘라파엘’로 온전히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비천한 ‘비도슈’에서 거룩한 ‘라파엘’로의 존재적 변화, 그것이 작품이 드러내는 성탄의 기적이다. 오랜 기다림의 마지막에 도래하는 성탄은 비천한 자가 거룩한 자로 높여지고,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며, 절망이 소망이 되는 역설이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 안에서도 비천하고 무기력한 ‘비도슈’가 자취도 없이 비워지고 숭고한 ‘라파엘’이 울려나오기를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