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심
2011-03-15 윤한솔
삶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은 어질고 착함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의지해야 함을 알고 세상을 살아야 한다. 나를 사랑하듯 남도 사랑해야 한다. 진정한 화합과 평등은 사랑함으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사랑함을 제대로 실천하면 저절로 벽은 무너진다. 사랑함과 그 실천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남녀가 서로 정을 주고받는 것만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딱한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게 좁은 것만은 아닌 까닭이다.
아침의 햇살을 보고 삶의 환희를 느낀다면 그 느낌이 곧 삶의 사랑이며 넘어가는 해의 노을을 보고 죽음을 느낀다면 그 느낌 역시 삶의 사랑이다. 이처럼 인간의 삶을 아끼고 돕는 것만큼 큰 사랑은 없다. 삶을 어느 누가 독점할 수는 없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살아야 하는 삶이란 모든 목숨이 나누어 갖는다. 그러나 인간은 저마다 잘 살고 못사는 삶을 나름대로 따져둔다. 부유하게 한 평생을 살면 잘 사는 것이고 가난하게 한 평생을 살면 못산다고 단정해 버리려는 경우가 그래서 생긴다.
부유한 삶은 무엇이고 가난한 삶은 무엇일까? 호주머니 속에 수억 원이 든 통장을 지닌 사람은 잘 사는 것이고 손 안에 돈 한 푼 없는 사람은 못사는 것일까? 분명 그렇다. 누가 뭐래도 삶을 돈으로 따진다면 돈의 액수로 따져서 잘 살고 못살고를 따질 수가 있다. 그러나 마음이 부유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마음은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콩 한쪽이라도 서로 나누어 먹고 백지장도 둘이 서로 맞들면 가볍다는 생각으로 삶을 바라보면 돈타령으로 잘살고 못살고를 판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짐작하게 된다. 서로 아끼고 돕는 마음을 돈이 빼앗아간 경우 돈을 움켜쥔 사람이 오히려 옹색해 보이고 도둑처럼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자기만 살겠다고 욕심을 부린 사람은 결국 손목에 쇠고랑을 차고 감방에서 갇혀 살게 되는 꼴을 자주 보게 된다. 잘 살려고 했던 것이 결국 못사는 꼴이 되어버린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마음이 가난했던 탓이다. 마음이 부유하면 적은 것으로 만족해진다. 무엇인가를 받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자꾸만 가난해지고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꾸만 부유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 지닌 묘한 세계이다. 석가여래 부처님은 마음을 공(空)하게 하라하고 노자는 마음을 허(虛)하게 하라한다. 空이나 虛란 무엇인가? 결국 나를 버리라는 말로 통한다. 무슨 나를 버리란 말인가? 욕심을 독점하려고 수작하는 나를 버리란 말이다. 남을 사랑하려면 나보다 남을 앞세워야 한다. 남을 앞세우려면 나는 그 뒤에 서야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욕심을 갖게 마련이다. 남을 위하려는 욕심이라면 버려선 안 되고 자기만을 위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제 욕심을 버리면 마음은 커지게 된다. 내가 남을 사랑한 만큼 남도 나를 사랑한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운 님이 되어야 한다. 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으로···!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