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엄마 노릇

2021-03-30     충청일보

[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딸에게서 둘째를 낳았다는 반가운 소식에 가슴이 울컥하여 눈물이 났다. 얼마나 고생 했을까 생각하니 맘이 짠하다. 아기와 산모 모두 건강하다니 너무 감사했다.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나 코로나로 인하여 면회가 안 되니 마음만 분주하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원 할 때까지는 딸도 손자도 볼 수가 없다. 사진으로만 손자 얼굴을 보다가 드디어 퇴원하는 날 서둘러 딸집으로 달려가 사랑스런 손자를 안았다. 새 생명을 안으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날부터 손자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울면 안아주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해가 저문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손자의 모습에 마냥 행복하다. 그런데 밤이 문제다. 수시로 우유를 먹여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 줘야 하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그렇게 2주일 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손자와 2주일을 함께 보내면서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7명이나 되는 자식을 어떻게 키우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릴 때 불렀던 어머님의 은혜를 속으로 부르며 눈물을 삼켰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 쓰는 마음/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손발이 다 달도록 고생 하시네".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박힌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로 인하여 손주를 키워주신 시어머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새롭게 다가왔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소중하고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도 약한 딸이 둘째를 키울 것을 생각 하니 안쓰러워 농담으로 돌이 될 때까지 일 년이 짠하고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러면 예쁜 모습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자라면서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겠는가. 지금도 까만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고 있던 손자의 얼굴이 눈에 밟힌다.

사위도 아이를 좋아하니 함께 잘 키울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예쁜데 요즘 아이들을 안 낳아서 걱정이 많다. 지난해는 혼인, 출산이 역대 최저로 인구 감소가 데드크로스 까지 갔다고 한다.  40조가 넘는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지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 사회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 이라고 했다.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위해서는 미래 비전도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동산의 안정과 일자리와 돌봄 문제도 결혼을 기피하는 큰 문제이지 싶다.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둘째를 낳은 딸과 사위에게 온 힘을 모아 응원을 보낸다. 식구가 네 명이 되어 완벽한 가족이 되었다며 만족해하는 딸을 보면서 필자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지금까지 살면서 딸에게 엄마로서 일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해준 것이 없다. 딸이 직장 따라 집을 떠난 뒤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다. 이번에 모처럼 엄마 역할을 한 것 같아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이제부터라도 엄마 역할에 충실해볼 참이다. 덤으로 할머니의 노릇까지 할 수 있으니 더 무얼 바라겠는가. 우리의 희망인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