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비상
[충청의창] 김성수 충북대 교수
참으로 씁쓸하다. 여름이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세상이 달라졌다. 차가운 바람은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고 초록의 빛깔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거리의 가로수만 앙상한 가지를 차가운 허공을 향하여 휘젓고 있다. 허무함이 거리의 구석구석 이리저리 뒹굴고, 그 무성하던 여름의 찬연한 푸르른 색과 찬란히 빛나던 붉은 열정의 태양은 식어버렸다. 회색의 도시에 내려앉은 무채색은 서넛씩 뭉쳐서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는 낙엽처럼 뭉쳐 다닌다.
회색의 겨울에는 유달리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늘 그렇듯이 삶과 죽음은 동반한다. 특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아파트 단지의 위 아래층에서 탄생과 초상이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의 삶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행복과 불행도 삶과 죽음에 엮여 함께 존재한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아름답고 따스한 천국이 될 수가 없다. 어느 한순간에 우리의 삶이 비참해질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의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이 시시각각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슬프고 애처로운 일들이 생기고, 살아가는 동안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더럽고 추악한 생명의 모습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한 무더기 낙엽들이 뒹굴어 간다. 가지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다시 나뭇가지에 붙어서 살아나지 않는다. 이렇듯 생명이란 존재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다. 우리 인간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생명이 기존의 어떤 존재가 형태를 변형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무로부터 만들어진다. 이렇게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즉 살아있다는 것은 죽어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그렇게 찬란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것이라 한다. 우리의 존재가 그렇게 가벼운 존재이기에, 그러한 사실은 우리는 견디기 힘들어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무척이나 외로운 사랑을 해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견디기 힘든 가벼운 존재로서의 고통을 태생적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아니 인간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인간이 그렇듯 허망하고 쓸쓸한 가벼운 존재라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우주의 먼지 중에 하나로 존재하다가 이내 사라져버려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무엇으로든 채워 가려 한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든 행복이든, 그 어떤 가치 있는 행복이란 형태를 가진 존재들로 삶의 허망함을 채워 가려 한다. 참으로 생명이란 어쩌면 이렇게 가여운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은 그 허무함을 사랑해야만 하게 되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가벼운 존재들은 그 가벼움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완벽한 짝사랑일 수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 존재하지 않는 것 안에서 존재하는 존재에 대한 발악하는 짝사랑일 수도 있다.
통속적인 사랑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울고 싶어도 울어보지도 못할 사랑, 절대로 잊혀가야 할 사랑! 어쩌면 그 세속적인 사랑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의 본질일 수도 있다. 존재는 무엇인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삶의 낙엽은 그렇게 가지로부터 떨어져 내린다. 그러나 분명히 낙엽도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였다 말하고 있다!
세상이 고요하던 날! 그날은 조금도 바람이 불지 않는 조용한 날이었네. 차가운 초겨울 달빛이 무겁던 날이었지. 생각은 그 은빛을 따라 대지로 흘러내렸네. 생명이 추락하는 것은 모두 사연이 있다지. 그래서 수직으로의 추락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네. 흔들리며 떨어지는 것들은 순간마다 달빛을 가르네. 조각난 생각들의 아주 짧은 작은 은빛 몸짓!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데 날개가 없는 존재의 추락은 날아 볼 기회조차 없네. 그래도 비상해야 하는 것이 가벼운 존재들이지. 왜 가엾은 낙엽은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져 내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