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부잣집 막내딸

2022-02-02     충청일보

[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어릴 적 우리 집은 딸이 여섯이나 되는 딸 부잣집이었다. 아들을 낳으려고 하다 보니 딸부자가 되었다. 여섯 번째 딸을 낳았을 때 필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지만 또 딸이었다. 엄마는 너무 속상하여 산후관리를 돕는 큰엄마에게 동생을 내다 버리라고 하시며 많이 우셨다. 그렇게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을 애태우며 태어난 막내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인 쉰 살이 되었다. 어리다고만 생각하고 생일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가까이 사는 형제들을 불러 점심을 함께 했다. 생일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잘 자라준 동생이 고맙고 감사했다.

식사와 커피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눈 후 기분 좋게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막내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동생은 태어날 때 딸이라는 이유로 설움을 많이 받고 태어났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많은 형제로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도내에서 4년제 국립대학에 입학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했었다.

그 후 서울로 가서 경실련, 희망제작소를 거쳐 한국농어촌 공사의 농촌사업본부에서 일했다. 농촌사업본부에서 일하면서 농촌의 실태를 알게 되면서 귀향을 결정하고 십여 년 전 고향으로 내려왔다. 귀촌 후 고민 끝에 '깨가 쏟아지는 마을'인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 하고 있다. 주변의 깨 농가를 대상으로 시중가격보다 높게 구입하여 깨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에 도움을 주고 , 또 농촌을 살려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불랙캣츠' 라는 여자 야구단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젊은 여성들을 참여 시켜 농촌 생활에 활력소가 될 수 있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공생을 위하여 주말에 읍내에 나가서 직접 농사지은 물건을 파는 농부시장인 '문전성시'를 열어,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는 농부시장을 만들어 운영도 하고 있다. 농산물도 있고, 음식을 만들어 오기도 하고 수공예품도 만들어 팔기도 한다. 필자도 문전성시에 가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도 많지만, 젊은 농부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랄 때가 참 많았다.

몇 년 전 부터는 마을 이장을 맡아 마을일을 보고 있다. 노령인구의 급증으로 인해 이장을 맡아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귀향을 참 잘 했지 싶다.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동생을 보면 때론 안타까울 때도 참 많다. 엄마랑 함께 살고 있는 덕분에 객지에 살고 있는 형제들은 엄마 걱정을 덜 하고 항상 위안을 받는다.

미혼이지만 많은 조카를 챙기고 힘들게 농사지어 언니들에게 베푸는 것을 보면 고마움에 앞서 미안함이 더 크다. 맏이인 필자는 부모님에 대한 젊은 모습만 생각나지만 우리 막내는 부모님의 아팠던 모습만 생각난다고 한다.     그런 동생이 고향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

태어날 때 엄마를 울게 한 동생이었지만 지금은 엄마에게나 가족 모두에게 없어 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며 농촌의 미래인 우리 집 희망인 막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