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이야기] 12. 동네 이름을 돌아보다 2 영운천

2022-04-20     충청일보
▲ 정진명 시인.

쇳내(金川)와 ‘작은대머리’ 사이에도 개울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이 영운천입니다. 穎雲川. 금천의 경우는 우리말과 또렷한 연관이 있어서 고민이 없는데, 이곳의 냇물에 붙은 이름은 어렵기만 합니다. 동사무소에서 소개한 글에서도 이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갈팡질팡입니다. 그곳의 동네 이름이 영운동(永雲洞)인데, 소리만 같지 한자가 달라서 더욱 혼란을 부채질합니다. 영운동의 ‘영운’에서 한자만 바꾸었다고 본다면, 그 의도를 짐작 못 할 것은 아닙니다.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들이 사회를 이끄는 중추 세력으로 성장하였는데, 이들의 특징은 요즘으로 치면 탈레반 같은 근본주의자들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내내 왕들까지 이들의 눈치를 보며 정치를 펼쳤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특성은, 생활 문화도 그 확신이 향하는 곳을 닮게 되고, 그것을 낳은 고향에 가고 싶어 안달하게 됩니다. 이슬람교도의 평생소원이 메카를 순례하는 것이라든가, 기독교도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려는 성향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벽에 제 사상의 스승이 살던 중국의 산천을 그린 그림을 그려놓거나, 자기 서재에 중국식 이름을 붙여 위안을 삼죠. 나아가 자기가 사는 동네에도 그런 이름을 붙이려 듭니다. 永을 穎으로 바꾼 것은 그런 몸부림의 자취가 짙게 풍깁니다. 왜 穎으로 바꾸었을까요? 중국의 지명 영수(潁水) 때문입니다.

영수는 중국의 허난성 동쪽에 있는 강입니다. 중국의 평화로운 시대를 이끈 요 임금이 천하를 소보(巢父)에게 넘겨주려다가 거절당합니다.(父는 사람 이름에 붙을 때 ‘보’라고 읽습니다.) 그러자 요는 이번에는 허유(許由)에게 부탁합니다. 허유가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도망가서 제 귀를 강물에 씻는데, 마침 그걸 본 소보가 강물까지 더러워져 물도 못 먹이겠다며 송아지를 끌고 상류로 갔답니다. 속세를 떠난 두 사람에게는 벼슬자리를 받으라는 말이 소에게도 먹이지 못할 만큼 더러운 얘기였다는 뜻입니다.

이후 이 고사는 속세를 떠나 고고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닮아야 할 이상이 되었고, 현실 세계에서 벽에 부닥칠 때마다 선비들은 이 고사를 인용하면서 제 불우한 처지를 합리화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박힌 옹색한 그곳에다가 끄덕하면 ‘영’자를 갖다 붙였습니다. 자신이 허유가 된 듯이 위안 삼은 것이죠. 요즘 말로 ‘정신 승리, 뇌 피셜’이랄까요? 이것이 우리나라의 지명에 중국 지명인 ‘영’자가 들러붙은 이유입니다.

영운천의 穎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것이 永을 穎으로 바꾼 이유입니다. 영운동(永雲洞)은 속세이지만, 그곳 개울을 건너면 고고한 자신이 사는 영수(潁水)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으로부터 천만리나 떨어진 이곳 땅에 그런 이름을 붙이고자 한 선비들의 마음씨가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름 없이 늙어가는 저의 동병상련일까요?

이런 설화를 걷어내고 영운(永雲)의 말뜻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보면, ‘긴 가람’을 만납니다. ‘긴’은 ‘영(永)으로 옮겼는데, ‘가람’을 ‘구름’으로 잘못 알고 운(雲) 자를 쓴 것이죠. 제 버릇 개 못 주는 ‘먹물’들은 알고서도 일부러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영천(永川)으로 바꿀 수도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