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이야기] 25. 한겨레의 뿌리 2

2022-08-03     충청일보
▲ 정진명

지도를 펼쳐놓고 유라시아 대륙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리장성을 넘어서 초원지대로 쳐들어간 한나라 군대에 쫓겨서 흉노족이 갈 곳은 2방향입니다. 중심을 빼앗겼으니, 동쪽과 서쪽 둘 중의 한 군데로 달아날 수밖에 없죠. 한나라 무제(武帝)의 집요한 공격으로 이들은 둘로 갈라져 달아납니다.

서쪽으로 달아나자면 지금의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처럼 천산산맥 너머로 쫓겨납니다. 거기 동유럽에는 원래 사람들이 살았겠죠. 그들은 다시 흉노족에게 쫓겨 서쪽으로 더 갑니다. 어디일까요? 북유럽입니다. 일파만파로 흉노족들이 끝없이 밀려들자 동유럽과 북유럽에 살던 사람들은 남쪽으로 밀려납니다. 그게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로마의 쇠퇴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습니다.

자, 서쪽으로 간 사람들은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게르만의 대이동을 촉발했는데, 동쪽으로 달아난 흉노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이상합니다. 서쪽으로 간 흉노족들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는데, 동쪽으로 간 흉노족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로 안 간 걸까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분명히 동쪽으로 간 흉노족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시기, 즉 한 무제가 통치하던 무렵에 동북아시아에서는 묘한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이때는 고조선 말기였는데, 이 시기를 전후하여 한반도와 요하 북동쪽의 만주벌판에 수많은 부족국가가 성립합니다. 삼국시대 이전과 초기의 변화가 모두 이 무렵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잠잠했던 고조선 강역이 시끄러워지고, 고대국가가 막 생기던 삼국시대 초기의 상황은 모두 흉노족의 대이동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몽골 초원은 바다 같습니다. 너무 넓어 영역을 표시할 수도 없고, 한 사람이 통치할 수 없습니다. 끝없는 초원을 크게 셋으로 나눕니다. 흉노족은 황제에 해당하는 사람을 '선우'라고 불렀는데, 그가 초원의 한복판에 삽니다. 한자 표기로는 '單于'인데, 이것을 '선우'라고 읽는 것부터가 심상찮습니다. 單은 뜻에 따라 음이 다릅니다. '홑'의 뜻일 때는 '단'이라고 읽고, '오랑캐임금'을 뜻할 때는 '선'이라고 읽습니다. 그래서 '선우'라고 읽는 것입니다. 한자말이 아니라 딴말을 소리만 적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우'가 뭘까요? 'jenap'의 소리를 적은 것으로, '폐하'를 뜻하는 고대 터키어입니다. 터키는 중국 측 기록에는 돌궐(突厥)이라고 쓰였고, 서양에서는 '투르크'라고 읽죠. 흉노의 일파(돌궐)가 서쪽으로 갔다가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눌러앉아 지금의 터키가 되었습니다. 흉노는 터키어를 썼다는 뜻입니다.

이 선우가 중앙에 있고 임금 둘을 뽑아서 좌우에 놓습니다. 그 왕을 좌현왕 우현왕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을 보좌하는 직책이 더 있습니다. 녹려왕, 골도후, 대당호, 대도위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이 서로 얽혀서 선우와 두 현왕을 연결하죠. 평소 이들은 따로 놉니다. 유목 세상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죠. 그러다가 큰일이 있을 때 힘을 합칩니다. 가을이 되어 겨울을 날 준비로 노략질을 해야 하니 어디로 모여라!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부족별로 청황적백흑 깃발을 휘날리며 집결합니다. 그리고는 만리장성을 넘는 것이죠. 멀리서 깃발을 보면 어느 부족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전투에서 부대마다 깃발을 들어 휘날리는 것은 여기서 비롯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