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강 그 사람
[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6월 동족상잔으로 많은 꽃 같은 사람들이 하나뿐인 생명을 버려야 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하략)
이 같은 명시를 남긴 시인 영랑! 1950년 서울 수복 전투 중 포탄 파편에 맞아 48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 6월이 오면 더욱 가슴 저리다. 나도 영랑처럼 봄이오면 온통 모란꽃을 기다리며 잠을 설치기까지 한다. 모란이 부귀화이며 화중왕이어서가 아니라 향기까지 지녀서인지 모란을 보면 모든 시름을 잊고 그 곁에 머무르며 작은 행복감에 전율하기도 한다.
지난봄 운이 닿아서인지 ‘제26회 한국문인상’을 받게 되어 이웃들로부터 축하와 선물도 전해 받았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 자주빛 모란꽃을 모아 곱게 싼 꽃다발을 받게 되어 할 말도 잊고 말았다. 바로 가슴팍에 안고 눈물이 비칠 정도로 기쁘고 행복했다. 더욱 감동인 것은 행여 전해주기 전에 시들까봐 하얀 휴지를 물로 적셔 아래 줄기를 포근히 감싸주고 같은 자주색 보자기를 구해 돌돌 말아 우아한 꽃다발을 만들어 들고 오신 것이다.
내가 태어나 남자분에게서 그토록 사랑하는 모란꽃다발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아마 댁에서 사모님이 예쁘게 잘라 싸주신 거지만 손수 들고 오셔 전해주시는 모습마저 숭고해 보였다. 잠시라도 꽃을 든 남자는 시인이면서 운초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역사바로잡기 등을 앞서 실천해 나가는 류귀현 이사장이시다.
청주에는 미호천이 있다. 음성 망이산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가는 길고 긴 강물의 이름이다. 동진강이라는 참이름을 빼앗기고 미호천으로 격하된 사실을 발견하자 그분은 본래 이름을 찾아주고자 동분서주하면서도 하찮은 내 수상에 꽃을 챙겨주시니 송구스런 마음도 없지 않았다.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고 강물 또한 그 흐름이 영원하기에 함께 달려온 추진위원을 포함 그 사람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한반도 역사의 질곡으로 끝내 한일합방이 되었고 1927년 일제가 우리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일개 천이 되어버린 미호천! 그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자 3년을 달려온 류귀현 이사장! 그 사람은 밤잠을 잊고 발원지를 찾아 답사하고 작년 12월엔 한국영토학회 회장 이상태 박사를 초청 특별 강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대조선국전도(1895년‧고종)에도 동진강(東津江)으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여러 고문헌 고지도에 엄연히 명시되어 있는 동진강! 심지어 1882년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전도에도 동진강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볼 때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된 큰 강인 것이다.
지난 5월 26일 동진강 명칭 복원을 다각도로 추진해온 운초문화재단에서는 세종문화원과 함께 충북역사문화 바로잡기 추진위원회를 열고 그간의 추진상황을 보고하면서 더 한층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였다. 마침 그날 오후 진천 은탄교를 건너다 눈에 띈 ‘국가하천 미호강’이라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가슴 한 켠이 쿵하였다.
충북도에서 깊이 접근하지 않고 일부 의견만을 받아들여 작년에 강의 이름을 얻었지만, 그의 본 이름은 동진강임에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지자체를 중심으로 환경부에 이르기까지 명칭 복원을 더 이상 미루어선 안될 것이다.
해가 바뀌고 봄이 오면 낮마다 밤마다 ‘또 한송이 나의 모란’을 기다리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면, 그 사람 동진강의 새 물결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간절한 노력으로 얻어질 것이며 남은 일생의 또 한송이 큰 모란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