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할머니들의 행복한 여행
[충청시론] 김복회 전 오근장 동장
세상 조용한 새벽3시, 부푼 가슴을 안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설렘과 떨림으로 준비한 우리들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14시간이라는 비행임에도 불구하고 힘든지 몰랐다. 뉴욕 존 에프케네디 공항에 내리면서 8박10일 일정이 시작됐다. 기대가 컸던 만큼 우리들의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뉴욕의 도로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우리가 가볼 도시들은 평소 매스컴을 통해 많이 듣고, 보았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것들을 실제로 현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큰 목적 일게다. 미국의 워싱턴, 맨해튼, 필라델피아등과 캐나다의 토론토, 몬드리올, 퀘벡 등 많이 들었던 곳이라 어색하지 않았다. 두 나라가 워낙 넓어 이동거리가 2~3시간은 보통이고 캐나다로 갈 때는 6시간이나 걸렸다. 긴 시간을 이동하면서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음을 실감했다. 농지가 끝도 없이 넓지만 일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모두가 기계로 하기 때문일 게다.
우리는 8일 동안 강행군으로 여러 곳을 다녔다. 뉴욕시내와 타임스퀘어, 자유의 여신상, 링컨과 재퍼슨 기념관, 위싱턴 기념탑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통령들의 모습도 돌아보았다. 기대가 컸던 센트럴 파크는 초입에서 인증사진만 찍고 돌아보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많은 곳을 다녔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공원과 나이아가라 폭포다.
한국전참전용사기념비는 미국인들이 한국전 참전의 뜻을 되새기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군장을 찬 군인 19명의 실제모습이 세워져 있었고, 삼만 육천여 명의 희생자 명단이 있었다. 그 옆에는 군인들과 관련된 24만여 명의 군상들을 화강석벽에 그려놓았다. 그 모습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런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세계 3대 폭포의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도 우리를 매료 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린 이곳에서 제트보트도 타고 헬기투어도 했다. 헬기에서 바라보는 폭포와 그 물줄기는 장관이었다. 스카이론 전망대의 돌아가는 식당에서 폭포주변을 바라보며 먹던 스테이크 맛도 우리들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무리 선진국이 잘 산다고는 해도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은 나라인 것 같다는 말에 우린 모두 공감했다.
이번 여행은 여고 동창생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육십 중반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여고 시절로 돌아간다. 지금은 모두 손주가 있는 할머니들이다. 자식들 키울 때는 직장에 매달려 예쁜지도 모르고 키운 것 같다. 그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손주들에게 올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도 손주들 선물 사는데 정신이 없다. 만나면 손자들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나의 룸메이트는 호텔에 들어와서도 손자와 화상통화를 한다. 못 말리는 손자사랑이다.
여행을 마친 후 추석을 맞아 손주들이 왔다. 손녀에게는 인형과 옷을 손자에게는 자동차등을 선물했다. 너무 신나 했다. 손녀는 매일 가는 곳마다 인형을 들고 다닌다. 세 살의 손자가 자동차를 안고 “할머니, 자동차 집에 가져가도 돼요?”라고 말하는 손자를 와락 껴안고 말았다. 할머니들의 행복한 여행에 손주들의 사랑이 더해진 더없이 행복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