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산을 두고

2024-01-17     충청일보

[박별칼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 시인

산을 바라보느라 눈을 뗄 수 없다
산과 함께 있는 것이라면/어떤 바람도 세우고 싶지 않다

바라보면서도
더 그리웁게 깊어가는 산/더 싱그럽게 솟아나는 산

지구촌 예서제서 검은 연기 올라도
산은 함부로 울지 않는다 (하략)

갑진 새해를 맞아 산을 그리며 시를 발표한 적 있다. 작년 11월 초 강릉에 갔다가 시간이 되어 우연히 설악산으로 발길을 향해 보았다. 단풍도 거의 시들고 춥고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소공원 입구에서부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젊은 다리로 공룡능선을 넘던 추억이 아스라한데 이번엔 단지 바라봄 만으로도 설악에 빠져드는 것이다. 계절상으로 사람들이 없을까 했는데 부산 등 전국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설악을 품에 안고 있다.

우선 권금성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보기로 하고 둘러보는데 외설악의 빼어난 산세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솟아오른 바위의 우뚝함이나 짙푸른 나무들이 멍든 가슴을 푸르게 하고 왜 진즉 설악을 찾지 않았을까, 오래전 운이 닿아 다녀온 금강산을 다시 마주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케이블카 차례가 되어 타고 오르는데 멀리 동쪽으로 수평선을 끼고 속초시의 정경이 그림같이 살아있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높이 솟은 바위들의 기묘함이 신선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얼마를 오르자 멀리 꿈에 그리던 울산바위가 보여 깜짝 놀라고 가슴이 두근댄다. 하늘이 내려놓은 병풍처럼 이어진 바위의 형세도 기묘하지만 색깔이 미색으로 고와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우리나라 5대 명산인 설악산에 울산바위가 자리한 것은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20년 전인가 큰 맘 먹고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다. 1708미터의 산 정상이 눈 앞에 있는데, 그만 기력이 다해 사과 한 알을 나누어 먹으며 간신히 도달했는데 그것은 나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적인 산행으로 살아있다. 기쁜 소식일까? 그 대청봉을 다시 안아볼 수 있는 ‘오색 케이블카’가 놓여진 다는 것이다. 11월에 착공식을 갖고 21세기 첫 육상공립공원 케이블카의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서 직선거리로 1.5㎞ 떨어진 ‘끝청(1640m)’까지 8인승 케이블카를 타면 15분여 만에 도착할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일이 열어질 수도 있다. 다만 일부에서 자연환경 파괴를 걱정하여 진통이 예상된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충북 속리산에도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산은 아무래도 숭고히 발걸음 옮기며 올라야 참 맛인데 자연도 어쩌면 극한 개발과 경제 논리에 심한 상처를 당하고 있어 마음 한 켠이 편하지 않다.

우리 땅 어디를 가더라도 산이 있어 하늘을 보고,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곳에 깃들어 사는 새들에게 굳었던 마음을 연다.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겸손의 마음이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모습이 따듯하다. 그의 마음에 사랑이 자라고 있다. 어디서나 말없이 등을 곧추 세우고 있는 귀를 열고 있는 산! 그의 허리가 건강하길, 그가 내놓은 맑은 물도 영원히 푸르게 흐르길 손모아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