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을 부르는 사회

2024-04-07     충청일보

[김명기의 톺아보기] 김명기 충청일보 편집인·논설위원

이번 총선처럼 말이 말을 낳고, 또 그 말이 말을 낳는 언어의 홍수에 휩쓸린 적이 있었나 싶다. 가슴을 울리는 명연설이 더러 있는 것 같고, 귀에 쏙쏙 박히는 효능감 있는 연설도 간혹 있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또 어떤 연설은 허접스럽기 이를 데 없는데다, 듣기에도 민망한 것으로 보인다.

말은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마디가 설화(舌禍)가 돼 스스로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칼과 같다.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아예 입을 닫는 게 상책이다.

 

아이와 집안 부인은 안 건든다

인요한의 설화는 한 두 번이 아니다. 처음엔 벽안(碧眼)의 한국인인 까닭에 실수려니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이다. 우리 말을 잘 알고 우리 말을 잘 쓸 수 있는,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그래서 벽안을 핑계 삼아 변명의 커튼 뒤로 그를 숨겨줄 이유는 없다.

한 두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은 의도이기 때문이다.

제가 뉴욕에서 4년 살았다. 마피아 조직도 아이하고 집안 부인하고는 안 건든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두고 다 지나간 일이라며 그가 한 말이다.

우선, ‘다 지나간 일이라는 단정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나 명품백 수수 논란은 아직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다. 검찰도, 법원도 아닌 자연인 인요한이 그걸 다 지나간 일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다. 그런 권한이 그에게는 없다.

마피아 조직이 아이와 부인은 안 건들이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이야길 여기에 빗대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늘 하던 말, ‘공정과 상식’, 그리고 법 앞의 평등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멸문지화라고 표현되던 조국 전 장관의 일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마피아조차도 가족은 건들지 않는다는 금과옥조를 깬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대파가 일파만파로 번져, 국민의힘을 대파(大破) 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됐었다.

주지하다시피 윤 대통령이 하나로마트를 방문하면서 대파 한 단 가격 875원을 두고 합리적이라고 한 말에서 시작된 파장이다.

대통령이 파 한 단의 가격을 알아야 할까? 알아야 한다. 서민들을 힘겹게 만드는 장바구니물가가 어떤지 알아야 그에 공감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몰랐다면 크게 잘못된 일일까? 모를 수도 있다. 대통령이라고 세상물정 세세한 것 모두를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몰랐다면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875원을 합리적이라고 말을 하면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래저래 넘어가는가 싶었을 즈음, 이수정씨의 뜬금없는 감싸기가 또 일을 키웠다. ‘한 단이 아니고 한 뿌리라는 말은 또 다시 민심에 불을 지폈다. 퍼포먼스까지 벌여가며 일을 더 크게 벌이더니, 종국엔 잠시 이성을 잃고 실수했다며 사과했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거짓을 덮기 위해선 또 다른 거짓이 필요하고, 또 다른 그 거짓을 덮기 위해선 또 또 다른 거짓이 필요하다. 거짓의 악순환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