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지금 여기의 십자가 부활

2024-04-10     충청일보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부활절은 음력을 따라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유동 축일로 춘분 이후 첫 보름달 다음 일요일이다. 올해 부활절은 지난 3월 31일이었다. 부활절은 구세주 예수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인류에 구원의 길을 열어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이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정수가 되는 축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부활절을 기념하는 것은 예수 부활과 인류의 구속이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과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바로 그 순간 그곳에 임하는 살아있는 사건으로 기리고자 함이다.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마사초(Masaccio, 1401-1428)는 ‘성 삼위일체’(1425-1428, 프레스코화, 667×317cm)에서 삼위일체를 화가 당시 현실 공간으로 고스란히 모셔놓음으로써 예수 십자가 사건을 ‘현재적 임재’의 사건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S. Maria Novella 성당 본당 서쪽 측랑의 세 번째 궁륭bay가 있는 곳에 그려진 벽화이다. 이 벽화는 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시대 최초로 선원근법이 도입된 선구적인 작품으로 늘 언급이 되는 작품이다.

이 벽화는 어른 눈높이 정도의 경계에서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는데, 그림의 상단 상부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가 그려져 있다. 마사초는 삼위일체를 십자가 위의 성자 예수와 예수 머리 위의 날개를 펼친 흰 비둘기로 표현된 성령, 십자가를 뒤에서 품듯이 양쪽 십자가를 손으로 받쳐주고 있는 이 사건의 주재자 성부 하나님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위의 아치형 궁륭에 서양회화 최초로 원근법적인 구도가 반영되었다. 소실점을 향한 기하학적인 선원근법을 처음으로 계산한 것은 브루넬레스키이지만, 브루넬레스키가 건축에서 도입한 선원근법을 회화에 최초로 구현한 화가가 마사초다. 마사초는 선원근법으로 평면적인 그림 속 공간에 깊이와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조르조 바사리는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에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에 대해 “(...) 원형의 장미장식과 원근법에 의해 사각무늬로 나누어진 궁륭형 천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며, 사각형이 점차 작아지며 단축된 천장으로 인해 벽에는 마치 구멍이 뚫려있는 듯하다.”라고 하여 마사초가 최초로 평면의 벽에 선원근법으로 도입한 깊이의 효과가 당시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전면에서 후면으로 갈수록 좁게 축소되는 원근법적 구도의 궁륭은 삼위일체를 감싸주는 높고 깊은 실제 천정처럼 만들어주고, 저 머나먼 고대 골고다 언덕에서의 예수 십자가 사건이 화가가 숨 쉬는 당시 피렌체 성당 궁륭 아래 ‘지금 여기’에서도 간단없이 이어져 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성 삼위일체의 십자가 양쪽 아래 서 있는 성모와 요한 사도가 있는 궁륭의 단 바로 바깥에 무릎 꿇은 후원자 부부의 모습도 성경적 시간과 공간을 현실의 장소와 시간에 연결해준다. 마사초는 ‘성 삼위일체’에서 선구적 실감형 미학적 공간 구도로 삼위일체 십자가를 화가 현실 공간에 안치하여 성경적 사건을 영원한 ‘지금 여기’ 현재적 역사로 구현한다.

 

▲ 마사초, '성삼위일체'(프레스코화, 667×317cm, 1425-1428),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