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죽음을

2024-05-08     충청일보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번 글에서 선원근법이 회화에 처음 도입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를 소개하였는데, 이번에는 작품의 하단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에 그려진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가 있는 상단과 관과 해골이 그려진 하단으로 구성된다. 벽화 상단 부분이 한때 캔버스로 옮겨져 있다가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지면서 벽화의 상단 부분과 하단 부분이 다시 원래 자리에서 합쳐지는 과정에서 상단과 하단 연결 부분이 손상되어 후원자 부부가 그려진 부분 바닥선 아래와 하단 사이에 띠가 하나 더 추가되는 등 현재 벽화의 모습은 최초 원작의 상태에서 다소 변형이 생겼을 수는 있지만 원래부터 상단과 하단 사이에 이 두 부분을 연결하는 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얼핏 보면 벽화의 상단과 하단이 마치 서로 상관이 없는 독립된 내용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성경에 근거한 입장에서는 하단의 관과 해골을 옛사람인 아담에 연관해 해석하며 상단과 하단의 관계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 벽화 상단은 예수의 십자가에 매달림과 부활을 그린 성삼위일체 모습으로 인류의 구원과 영원한 부활의 상징을 보여준다면 관과 관 위에 놓인 죽은 자의 유골이 그려진 벽화 하단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원죄를 지고 태어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조건을 상기시킨다. 마사초는 신비로운 깊이가 느껴지는 아치형태의 천정 아래 성삼위일체의 상단과 관이 놓인 성당 벽의 하단을 층이 있는 단으로 분리하면서 또한 서로 연결시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예수의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복음을 담아낸다.

다른 각도에서 그림 맨 아래 관과 그 위의 해골은 서양에서 중세 때부터 많은 예술 작품에서 테마로 삼아온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상기시킨다. 중세에는 흑사병과 기근, 전쟁과 같은 재해를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특히 중세 때 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에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나 절반 정도나 사망할 정도였다. 그러한 시련을 겪으면서 유럽인들은 삶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고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또한 삶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삶 바로 곁에 있는, 혹은 찰나 같은 삶 바로 뒤에 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생각하라는 모토가 중세부터 아주 중요한 한 테마가 된다. 이러한 죽음을 생각하는 사유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유한하고 허무하지만 지금 여기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그 순간들에 충일할 것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도 성삼위일체 아래에 놓인 관과 그 관의 주인으로 여겨지는 해골은 이러한 메멘토 모리를 상기시킨다. 관 위의 해골과 뼈대 위에는 “IO FUI GIA’ QUEL CHE VOI SIETE E QUEL CHE IO SON VOI ANCOR SARETE(그대들이 지금 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나도 인간이었고, 아직 인간으로 살고 있는 그대들도 나처럼 죽게 되리라)”라고 적혀 있다. 우리와 같았고, 우리도 같아질 고인의 유언 같은 이 문장이 메멘토 모리를 또 한 번 상기시켜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