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존경’의 과제

2024-05-23     충청일보

[오병익칼럼] 오병익 전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장·아동문학가

"만약 내가 교육부 장관이라면 '수학능력시험'을 폐지하겠다. 같은 문제를 일렬로 줄 세우는 교육제도 아래서는 다양성·창의성·국제감각을 키울 수 없다"는 최근, 김형석 명예교수의 일침에 뜨끔했다. 초임교사 발령 때 옆 반이었다는 여학생(지금은 중년)한테 전화가 왔다. “꼬박 선생님 교실을 기웃거렸다…”며 40여 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요점인 즉, 5개 반 중 맡아 놓고 일등하는 우리 반이 부러웠단다. 그래서 소위 학습 컨닝으로 성적을 올려 담임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솔직함까지 털어놨다.

생각할수록 새내기 시절이 부끄러웠다. 매달 월말고사 그래프를 교장실에 붙여 학급별 등위로 볶았다. 학교는 경쟁만이 살길이고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쳤는지 모른다. 되짚어 보면 다양성·창의성·세계화와는 완전 역주행을 교육의 정답인 줄 알았으니 엉터리 아녔나. 오전·오후반으로 북적대던 그 많은 학생들, 저마다 선생님 숨결이 재탄생되고 재발견되기를 얼마나 손꼽았을까.

◇ 어물쩍 오류

지난 스승의 날을 앞두고 실시한 전국 교원 설문조사(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결과 ‘다시 태어나도 교직 선택’ 응답이 19.7%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가장 큰 고충으로는 '문제행동, 부적응 학생 등 생활지도'(30.4%)를 1순위로 꼽았으며 '학부모 민원 및 관계 유지'(25.2%), '교육과 무관한 행정업무'(18.2%)도 빠지지 않았다. 사(師) 부(父) 제(弟) 일체는 그야말로 파면 팔수록 참담하다. 수업 훼방 학생은 외려 선생님을 협박하고 어떤 학폭 관련 학생은 면담 중 교장실에 뛰어들어 난동까지….

지난해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열 차례 넘는 '교원 총궐기 집회' 결과 '교권보호 4법'을 일궈냈다. '교원지위·초·중등·유아교육·교육기본법' 등 개정안에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악성 민원으로부터의 교원교육활동 보호와 가해학생 조치 강화 및 행정지원, 유아생활지도 권한의 울타리를 담고 있으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최근 교육활동 보호에 대한 변화를 묻는 설문(대구교사노동조합) 응답자 77%가 '교권이 보호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여전히 말 그대로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는 얘기다. 막무가내 확장편향 소송에 몇 년 째 시달려온 모 교원들 울분을 어찌 몇 줄 글로 담아내랴. 단독 또는 교장·교사 연대, 보호감독 의무위반은 예측가능(구체적 사고발생 위험성)한 경우다. 하지만 실제 교권보호 장치 시스템이 민‧형사상 면책 등을 끌어내기란 아직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반응도 십중팔구다.

◇ 100년 합작품

명예퇴직 숫자가 정년퇴직을 추월한다. 그 심연을 들여다보면 힘 빠진 교육현장·고독한 교권, 버겁고 냉혹함에서다. 특히 저연차 교사들의 퇴직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는 데에 대한 교육계 우려는 상당하다. “눈보다 마음에 보이지 않는 게 두렵다”고 탈무드는 읍소한다. 예부터 100년을 좇아 헤매왔다. 삶과 동떨어진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인간을 품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세상에 무시해도 될 아이는 없다. 스승존경의 지름길 역시 자신을 부지런히 사랑하는 데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