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질의 속성

2024-06-19     충청일보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수학의 집합에서 어떤 대상이 집합에 속하는지 여부는 객관적 기준으로 명확해야 하며, 주관적인 기준으로 집합의 대상을 정할 수는 없다. 연봉이 1억 넘는 사람의 집합은 가능하지만, 월급이 많은 사람의 집합은 되지 않는다.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의 집합은 되지만 행복한 사람의 집합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만족감이나 행복 등 주관적 감정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수학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그야말로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고, 불행해 보여도 더 불행한 누군가를 보며 스스로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만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주관적 만족감이 객관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 행위가 바로 들어주는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자랑질이란 고약한 짓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랑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자랑거리를 찾고 알리는 데 열정을 보인다. 이런 자랑질에 상대방이 부러워하고 찬사를 보내면 자신의 자랑질이 객관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더욱 만족해한다. 그러나 반대로 자랑질을 들으며 부러워하는 자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열등한 상태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므로 더욱 불행감을 느끼고 박탈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부러움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행복한 상태임을 확인받은 것이라면,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은 반대로 자신이 상대적으로 불행하다는 것이 되니 그렇다.

스마트한 디지털 시대이니 자랑질의 방법과 도구도 점점 발전한다. SNS가 대표적이다. 과거의 자랑질은 대면 상태에서 직접 하는 자랑질이니 그 전파 범위나 대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엄친아만 비교의 대상이었던 시대는 옛날얘기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무한 복제와 거리 제한 없는 동시성이다. 결국 SNS를 통해 누군가의 자랑질을 거의 제한 없이 무한정 범위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세상은 광범위한 스트레스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이 완벽하게 조성되었다. 타인의 SNS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저 사람의 삶은 저렇게 멋지고 고상하고 우아한데, 내 현실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보잘것없을까 하는 초라함이다.

인간은 체면이라는 것에 민감하고, 남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며 자신을 좀 더 괜찮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외출복이나 패션, 거울, 화장품. 성형 등 이런 수많은 단어는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SNS 게시물은 당연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을 포장하게 돼 있다. 우리가 보는 타인의 게시물은 대부분이 삶의 하이라이트를 멋지게 포장하고 편집해서 게시된 것이다. 내가 겪고 확인하고 인식하는 내 삶은 하이라이트만 편집된 것이 아닌 현실 그 자체의 다큐멘터리이니 당연히 구질구질한 부분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쇼윈도 부부는 밖에서 볼 때 완벽해 보이지만, 내심 문제 많은 부부를 말한다. SNS의 모습도 어쩌면 현실과는 괴리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편집된 자기일 경우가 많다. 실존하는 모습이 아닌 최상의 장면을 편집해 보이는 타인의 모습에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부러우면 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