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초래한 푸틴의 딜레마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처음 언급한 건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였지만, 이를 유명한 말로 만든 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시내각 총리였다.
처칠은 1946년 3월 5일 미국의 미주리 주 풀턴에서 연설을 통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공산국가들이) 발트 해의 슈체친으로부터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철의 장막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는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중국이 1949년 이와 비슷한 고립 정책을 채택했을 때 중국과 소련의 정책을 구별하기 위해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이라는 용어를 쓴 것과 비교된다.
철의 장막을 통한 소련의 구속력과 견고성은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후 상당히 완화됐으며, 1980년대 중반 서서히 붕괴돼 갔다.
신냉전으로 되돌아가는 국제 정세
완화됐던 냉전이 신냉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중국의 시진핑도 ‘일대일로’ 등의 정책을 통해 주변국들을 회유하거나 겁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주역은 러시아의 푸틴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부터가 그렇다. 나토(NATO)의 확장성에 두려움을 느끼던 푸틴은 우크라이나까지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이를 임계점으로 삼은 듯하다.
지난 6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그는 예상을 깨고 ‘레드라인’을 넘어버렸다. 한국이나 미국 등이 마지노선으로 삼은 레드라인은 ‘전쟁 상태에 대한 북러의 자동 군사개입’이다.
이날 회담 결과물인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다.
사실상 군사동맹이라는 주장과 과대 해석이라는 반박이 그것이다. 신냉전의 상징이라는 주장과 이해에 따른 일시적 결속이란 주장 또한 맞선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너무나 큰 위협이다.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가 앞으로 어떻게 응해오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무기의) 조합이 달라질 것이라는 뜻이다.
한국을 너무 얕봤다
러·우전쟁은 푸틴의 오판에서 시작됐다. 타국에 대한 침공에서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인지도를 높인 푸틴은 이미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점령한 바 있었다. 그리고 이는 2022년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공격에서 손쉽게 승리할 것으로 여기는 오판이 됐다. 경적필패(輕敵必敗)다. 더구나 벌써 2년이다.
우크라이나 군인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군인들 또한 가늠조차 안 될 사상자가 발생했다. 체면을 구긴 푸틴이 불리한 전황에서 손을 내민 건 북한이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인적·물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게 북한은 돌파구가 됐던 것이다. 북·러 간 무기 거래는 이미 미국 군사 관련 전문기관 등에 여러 차례 포착된 바 있다.
푸틴에게 북한은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 보답으로 나타난 것 가운데 하나가 이번에 체결한 동맹 수준의 조약이다.
그런데 간과한 것이 있다. 이 조약은 대한민국에 직접적인 위해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당연히 발끈하고 나섰다. 상황에 따라선 그동안 자제해 왔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실현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잖아도 러시아는 전차의 성능 면에서 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우크라이나에 비해 열세였는데, 한국의 K9자주포나 K2전차가 러·우전쟁에 투입된다면, 이는 게임 체인저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푸틴은 서둘러 한국의 개입을 경고하고는 있지만, 앉아서 당하고 있는 입장에선 그것이 강력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언제든 러시아의 뒷덜미를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푸틴의 입장에선 이래저래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