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인간관계

2024-07-10     충청일보

[충청시론] 정세윤 변호사

우리는 더불어 살아간다.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에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 지인 등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혼자만으로는 절대 살 수 없다. 그렇기에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는 건강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거나,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관심조차 없거나 아예 무지한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필자 또한 몇 가지 일련의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필자가 법조인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자주 받는다. 몇 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던 지인들은 물론이고 평소에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오던 친구들을 포함하면, 일주일에 2~3번은 법과 관련된 사건, 사고에 대한 문의가 대부분이다. 또한 변호사라 자산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 여러 번 있다.

처음 변호사가 된 후 지인들의 이러한 법률적 문의의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왠지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를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변호사가 된 후 12년이 된 지금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법률 상담을 무료로 정성껏 30분 정도 해주고 나면, 지치기도 하거니와 연락 온 지인들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 커졌다. 평소에 나의 안부를 묻는 지인들, 나의 생일을 챙겨주거나 내가 사는 곳 인근에 왔을 때 연락을 하여 잠깐이라도 시간을 함께 보내는 친구들에게는, 나의 법률적 자문이나 조언 등에 그 어떠한 수고스러움도 없었고 오히려 나에게 연락을 해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인들은 어떠했을까? 필자를 도구처럼 생각하고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으며 자신의 궁금증만 해소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평소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평생 법률적 분쟁 등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나에게 연락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반드시 끊어 내야 한다. 나를 자신의 도구로 생각할 뿐 아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몇 년 만에 대뜸 연락하여 어떠한 부탁하는 지인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부탁이 지난 몇 년간 수차례 반복되었고 그러한 부탁을 할 때만 연락을 하는데, 거기에 그 어떠한 대가도 없는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또 다른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는 ‘관계’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내가 연락을 먼저 했으면, 적어도 상대방 또한 1번 이상의 연락, 즉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필자의 경험을 얘기해 보자면, 필자가 좋아하는 동기 형이 있었다. 그 형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었고, 경조사는 물론 생일은 매년 챙겨줄 정도로 필자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해 온 관계였다.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뭐라도 해주는 것이 필자의 행복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약 10년 동안 항상 필자가 먼저 연락하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관계를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의도적으로 한동안 연락을 끊어 보았다. 한 달 두 달, 필자의 생일이 지나가고 해가 넘어가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필자가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과 입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위로의 안부 전화 한 통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인간관계 역시 일방만이 원하고 바라는 이른바 ‘짝사랑 인간관계’로 불필요한 인간관계이다. 앞서 언급한 인간관계는 타인이 나를 도구로 취급하여 이용하는 관계였다면, 짝사랑 인간관계는 내가 기꺼이 타인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 관계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짝사랑 인간관계’의 특징을 보면, 주로 본인이 외롭고 능력이 없다거나 또는 상대가 내가 가지지 못한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나는 관계이다. 본인이 자처하여 희생을 무릅쓰고 타인의 도구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므로, 관계를 유지하며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익이 거의 없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그 즉시 끊어 내야 하며, 동시에 본인의 역량을 타인에게 의지하고 기대하지 않을 정도로 키워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