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과 도시재생

2024-07-17     충청일보

[목요사색] 정우천 입시학원장

조그만 소읍인 고향을 떠나 고등학교를 진학한 이후 잠시 직장 때문에 서울 생활을 한 것 외에는 대부분의 삶을 청주에서 살았다. 젊은 시절에는 내 집이 없으니 몇 번 이사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했고, 30여 년 전 용암지구가 신도시로 개발되었을 때 이곳에 터를 잡고는 이제껏 살고 있다. 내가 나이 들고 늙어가듯, 한때 신도시였던 이곳도 이제는 낡은 구도시가 돼가고 있다. 거주민이 노령화되니 천 명이 훌쩍 넘는 학생으로 붐비었던 이곳의 상당초등학교도 이제는 신입생이 없어 폐교하고 새로 개발된 동남지구로 학교를 이전한다고 한다. 용암지구의 중심 상권도 초창기에는 각종 유흥시설로 불야성을 이루었으나 이제는 지리멸렬한 상권으로 전락해 그곳을 지키는 소상공인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도시가 확장되고 개발되면 구도심의 공동화와 노후화가 늘 문젯거리다. 재개발보다는 새로운 곳을 개발하는 것이 쉽고 경제성도 높으니 도시는 늘 도넛형으로 발전한다. 도시가 외곽으로 범위를 넓혀갈수록 기존의 구도심은 공동화된 낙후 지역이 된다. 역사가들은 로마를 지탱한 것은 유지와 보수였다고 하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제국은 멸망했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자기관리가 건강을 지키듯 공동체도 관리와 정비가 꼭 필요하다.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이론이 있다. 1982년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발표한 이론으로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는 사소해 보이는 일이 그 주변으로 범죄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깨끗한 거리에서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도 더러운 지역으로 가면 죄의식 없이 아무 데나 휴지를 버리는 심리상태를 가진다.

1980년대 뉴욕 지하철은 각종 범죄로 악명이 높았다. 켈링 교수의 제안으로 지하철에 도배된 낙서를 지우는 작업을 몇 년에 걸쳐서 했고, 그 후 뉴욕 지하철 범죄는 75%나 줄었다고 한다. 1994년 취임한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지하철에서 성과를 올린 범죄 억제 대책을 뉴욕 경찰에 도입했다. 낙서를 지우고 보행자의 신호 위반, 쓰레기 투기 등의 경범죄를 철저하게 단속하게 했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마침내 뉴욕은 범죄 도시의 오명을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모두가 허겁지겁 빠르게 달려서 건너는 횡단보도에서 혼자 느긋하게 천천히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인간은(아니 대부분의 동물은) 군중심리에 영향을 받으며 주변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사회의 분위기를 올바르게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분위기의 존재가 그 사회의 활력과 역동성이다.

낡고 노후화로 공동화되어가는 도심을 방치하면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방지하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려면 구도심의 개발과 도시재생은 필수적인 것 같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완공으로 관광 중심지로 거듭났으며, 뉴욕은 ‘하이라인 파크’ 개발로 도시의 흉물을 시민에게 여유와 안락함을 주는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청주도 오래된 연초제조창을 문화제조창으로 개발해 도시재생의 모범을 보였다. 지난달 오래된 용암동 소재 시립정보도서관의 리모델링 재개관을 보니 그래도 건강하게 관리되는 공동체의 모습에 반가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