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충청일보 / 50년 전 오늘 (86)

신라 때 놓은 농다리 발견

2024-07-25     김명기 기자

()()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돌다리.

숱한 전설 속에 파묻혀 오고 있는 긴 돌다리를 鎭川郡(진천군) 문백() 구곡() 마을 사람들은 농()다리라고 불러오고 있다.

엄청난 크기의 바윗덩어리, 그러나 강판처럼 넓적넓적한 바윗덩어리가 얹혀져 있고 그 밑을 굵직굵직한 돌덩어리가 받침이 되어 놓여져 있는 이 다리가 정말 이상하게 생겨진 다리라는 것은 느껴왔지만 아무도 新羅(신라) 천년의 비바람을 삼키며 이 나라 역사를 지켜온 증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 돌다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고 가장 긴 다리임이 檀國大(단국대) 박물관장 鄭永鎬(정영호) 교수(문공부문화재전문위원)에 의해 밝혀져 사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됐다.

興武王(흥무왕) 金庾信(김유신) 장군 탄생지 성역화 문제에 따른 考證(고증)을 위한 사적 조사 차 지난 16~17일 이틀간 鎭川 지방에 내려와 장군이 태어난 진천() 상계里 桂陽(계양)부락 장군터를 직접 확인하고 장군의 ()를 묻은 胎靈山(태령산) 등 유적지를 낱낱이 살펴 본 교수는 이 다리를 보고 연거푸 감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最古(최고) 最大(최대)의 돌다리로서 고기비늘이 층을 이루며 있듯 그런 양식으로 쌓은 것이라고 말하고 받침돌을 쌓아 올린 형식 등으로 미뤄보아 新羅 때 놓아진 다리임에 틀림없다고 밝혔다.

이는 훌륭한 보물로서 國寶(국보)로 지정받아 보호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교수는 말했는데 錦江(금강) 상류 줄기의 강물이 돌다리 아래로 구비치고 있다. (하략) <9050·1974723일자 3>

 

동네 아낙들의 빨래판으로 쓰이다가 국보가 된 것이 충주고구려비다.

1979년 충주 지역 문화재 애호가들이 모인 예성 동호회가 당시 중원군 가금면(현재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입석(立石)마을에서 발견했는데, 이 비는 고구려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다. 우리 강산 어디든,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소소한 것들도 세심히 살펴보면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준다.

그저 오래된 동네 돌다리로만 알다가 그 귀중한 가치를 되새기게 된 진천 농다리(鎭川 籠橋)는 충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산동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 있다.

기사를 보면, 50년 전 정영호 단국대 교수가 그 가치를 재조명했음을 알 수 있다.

19761221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8호 진천농교(鎭川籠橋)로 지정됐다.

농다리는 문헌에 따르면 고려 초 임 장군이 세웠으며, 붉은 돌로써 음양을 배치해 28수에 따라 28칸으로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정 교수의 신라시대 축조 주장과는 세월의 차가 있다.

28칸의 교각으로 돼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며 교각이 유실 돼 24칸이 남아있던 것을 200828칸으로 복원했다.

건교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뽑혔으며, TV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모래시계등의 촬영지로도 쓰였다. /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