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관한 기억1
20여 년 청춘을 오롯이 바쳐 살미와 연풍천주교회 공소회장을 지낸 아버지께서 농사를 짓겠다며 연풍에서도 더 산 속 깊숙한 오지, 종산이란 동네로 들어간 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공소회장 몫으로 나오는 월급이란 게 쥐꼬리만한 것이어서, 그것으로 딸린 여섯 식구들 먹여살리기엔 턱도 없었고, 내실에 있는 몇 백평 땅에서 나오는 소출 또한 고만고만한 것이어서 우리 집안은 늘 곤궁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아버지께서 가은에 있는 광산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해버린 터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버진 결국 산 중턱에 있는 화전밭 1만평을 덜컥 사들여 폼나게 농사 한 번 짓겠다고 선언했던 것인데, 그 호기로움을 좋게 봐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농사일이 힘겨우셨던 어머니
말이 1만평이지, 그 넓이는 어린 내 눈에는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아버진 손은 워낙 커서 담배 5단 농사나 누에고치 5단 쯤은 예사로 신청해서 지으셨는데, 초보 농사꾼이 그걸 감당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었다.
동네에 그런 말이 있었다.
‘진하 말 듣나마나, 창식이 농사 지으나 마나.’
아이들조차 업수이 여기던 진하 아저씨의 말을 동네 어른들은 껴주지 않으려했고, 초보 농군 아버지의 농사는 보지 않아도 피농이라는 이야기였다.
덤벙덤벙 일만 크게 벌이는 아버지 탓에 온갖 노동이 병약했던 어머니에게로 떨어졌다.
어느 날 부엌에서 뻐끔담배를 피우는 어머니를 봤다. 소주도 한 잔 했는지 얼굴이 불그레했다.
“엄마답지 않게 웬 술 담배?”
어머닌 긴 한숨을 쉬더니, “에구 너무 힘들어. 밭을 매다가 쓰러지면 그냥 누구라도 내 몸뚱이에 흙이라도 덮어줬으면 좋겠어”라고 하셨다.
소주라도 한 잔 해야 어깨를 짓누르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외상을 달고 소주 4홉을 샀다
계절이 바뀌고 설을 앞둔 어느 날. 헛헛한 빈속을 채우려 찬장을 뒤지다 4홉 소주병을 발견했다.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도대체 맹물과 똑같이 생겨먹은 소주라는 놈이 마시면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아질까 싶었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은, 어른들의 거짓말일 것이다, 맹물과 같은 것이지만 소주라는 명찰을 달고 있기 때문에 ‘그냥 기분이 좋다’라고 말 하는 것일 게다, 그런 거였다.
아니지, 그러면 이 참에 내가 한 번 먹어보자. 기분 좋은 척 하는 어른들의 거짓말을 밝혀내자. 생각은 점점 더 번져갔다.
돌돌 만 신문지를 뚜껑 삼아 닫은 소줏병엔 두어 잔 정도 술이 남아있었다. 홀짝 마셔보니 쓰기만 할 뿐. 도무지 어른들은 이 쓴 소주를 왜 마시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웬걸, 기분이 솔솔 좋아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니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맹물과 똑같이 생긴 소주라는 놈에게 사람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묘약이라도 섞어놓았단 말인가.
이왕 좋아진 기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동네 구판장에 가서 우리 어머니가 사오라고 하신다며 소주 4홉 한 병을 달라고 했다.
어머니 이름으로 외상을 달고 4홉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나오는데, 더럭 겁이 났다.
어린 것이 엄마 이름으로 외상을 단 것도 그렇고, 어른들만 마셔야 된다는 소주를 마신 뒤에 따라올 후과가 두려웠다.
그래도 이왕 샀으니 될대로 되겠지, 한 번 마셔나 보자. 그렇다고 혼자선 못 마시겠고, 규동이, 규환이, 승룡이 동네 친구들을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