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군주민수

2024-11-03     김명기 기자

닉슨 미 대통령이 하야한 건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때문이었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 동안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침입과 도청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닉슨 하야의 스모킹건이 됐던 건 불법 침입과 도청 자체가 아닌, 이를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이를 감추기 위해 미국 행정부는 조직적으로 권력을 남용했고, 이로 말미암아 탄핵안 가결이 확실시되자 닉슨은 197489일 대통령직을 사퇴했다.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됐다.

 

국기 뒤흔드는 통화 내용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1일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 간의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통화 녹음본에 있는 윤 대통령의 말.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

명씨는 이에 답한다.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공개된 통화는 윤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인 202259일 이뤄졌다. 같은 해 6월 재보궐선거에서 김영선 전 의원은 공천을 받았다.

명씨가 지인에게 윤 대통령과의 통화 당시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는 녹취는 더욱 가관이다.

녹취에는 지 마누라가 옆에서 아니 오빠, 명 선생이 그거 처리 안 했어? 명 선생 이렇게 아침에 놀래서 전화오게끔 만든 게 오빠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라고 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나는 했다고 마누라한테 얘기하는 거야. 장관 앉혀라 뭐 앉혀라 이러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는 명씨의 발언이 담겼다.

국민들로선 차마 상상조차 못할, 국기를 뒤흔드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용산 대통령실의 반응은 매우 놀랍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실 대상 국정감사에서 정치적, 법적,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이 덕담수준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거짓은 거짓을 재생산 한다

매우 안이한 대응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은 아닌지 싶다.

거짓이 위험한 건 거짓을 거짓으로 덮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의 거짓을 덮기 위해선 여러 번의 거짓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거짓은 또 논리적 허점으로 결국 거짓으로 판명날 수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신뢰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국민이 그 지도자를 믿는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국민으로부터 신뢰가 떨어진 정권은 매우 위태로워진다.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순자 왕제(王制)’편을 보면, 군주민수(君舟民水)라 했다.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라는 뜻이다. 임금은 백성이 세우지만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면 백성이 그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윤 대통령의 진솔한 대국민 사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