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학동인회
충북대 캠퍼스는 맑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예쁘장한 패널로 시전(詩展)을 열고 있는 후배들을 보니 참 흐뭇하다. 10여 년 만에 대학에 찾아온 듯싶다.
지난 15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 앞에서 창문학동인회(窓文學同人會)의 ‘낙엽제’가 있었다. 낙엽제는 창문학동인회 충북대에 재학 중인 현 동인들이 가을에 여는 시전이다. 오랜만에 창문학 후배 동인들의 시를 본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40년 가까이 보지 못했던 선후배 명예동인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설렘이었다.
종교와도 같았던 문학
충북대학교 창문학동인회는 1964년 10월 10일 발족했다. 어언 60년의 역사를 세웠다.
1984년 창문학동인회 24기로 가입했을 때 가졌던 것은, ‘참 이 사람들 치열하게 사는구나’라는 느낌표였다.
동인들에게 문학은 종교와 같았다. 뭣이 그리 중하다고, 동인들은 문학이라면 죽음이라도 불사할 듯 보였다. 동인들에게 문학은 구원의 길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니, 그때 배우고 가졌던 그 치기어린 열정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듯도 싶다. 글을 쓰며 먹고사는 직업이니, 허구헌날 술 먹고 문학이야기 하고, 문학이야기 하려니 또 술을 먹고 하며 지냈던 20대 젊은 시절이, 결국 글을 쓴다는 고단한 일에 쏠쏠한 자양분이 되는 듯하니 말이다.
창문학동인회에서 60주년을 맞아 ‘그 기억의 빗살무늬’라는 이름의 문집을 발간했다.
전영학(12기·소설가·전 충주여고 교장), 박병철(14기·전 서원대 교수), 박현순(14기·전 강화여고 교장), 장문석(15기·시인), 류정환(25기·시인·고두미출판사 대표) 편집위원회 멤버들의 고생이 많았다.
편집위원들의 후기를 보니 참 정겹다.
‘문학의 세계는 평화로우며 자유롭다. 비록 그 세계에 온몸을 던지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곳을 지키려는 아름다움이 대를 이어왔다. 누가 앞장서서 이끌어 온 것도 아니다. 그냥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때가 되면 다가왔고, 때가 되면 캠퍼스를 떠나갔다. 아주 영 결별한 것은 아니다. 모두들 마음 한구석은 내려놓고 갔다. 그것이 오늘 이렇게 빗살무늬로 아롱져 있다.’
수많은 문인들 배출
선배들을 만났다.
낙엽제에 참석한 최고참, 박순배 선배는 6기다. 1945년생이니 80세다. 서울서 약사 30여 명을 두고 있는 세연약국 대표인데, 노구를 이끌고 오셔서 금일봉을 주셨다. 그리고 뒤풀이까지 오셔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70대 선배들도 수두룩하고, 60대 명예동인들은 말석에 앉았다.
창문학동인회는 그동안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창문학동인회라는 토양에서 문학을 배우고 낭만을 느끼고 삶의 지혜를 배웠던 사람들. 시인, 소설가, 평론가로 활동하는 많은 선후배들을 소개한다.
김동욱, 김시천, 장문석, 정한용, 김경식, 김신중, 심춘보, 임혜신, 이범철, 김은숙, 박재옥, 박윤배, 정진명, 김성장, 류정환, 김종우, 박미서 등의 시인들이 있고, 소설가로는 전영학, 안태영, 권경희 등이 있다. 수필가는 김홍은, 정승근, 조관형, 임종헌, 남영은, 평론가로는 정한용, 정효구 등이 있다.
뒤풀이 자리가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40년 가까운 세월 만에 만난 선후배들이니 그동안 켜켜이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이 오죽이나 많을까.
그 소리가 그런데 정겹다. 정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선후배들을 보니 4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아스라한 기억 저편의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