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겸손으로 교만을 죽이다 -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전에서 카라바조 작품 10점을 포함, 바로크 대표작가 작품 총 57점이 전시되고 있다.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보려고 보르게제 미술관에 찾아갔는데, 이 그림이 우리 곁에 찾아왔다.
1571년 9월 29일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는 1576년 강타한 페스트로 아버지와 형제 일부를 잃었다. 젊을 때부터 과격하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말다툼과 시비에 휘말리곤 했던 그는, 그의 천재성을 아끼는 성직자와 귀족의 비호에도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사형을 선고받아 쫓겨 다녔다. 그는 숨어 다니면서도 귀족들의 후원과 보호를 받아 곳곳에 작품을 남겼다.
보르게제 미술관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그가 예술성으로 사면을 받고자 가져가던 그림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개를 담아 화가로서의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내려진 사면을 알지 못한 채 1610년 7월 18일 에르콜레 항에서 죽게 된다. 그의 예술은 화가의 인간적 약점과 그에 대한 적대적인 의견들로 오래 묻혀 있다 20세기에 와서 재평가된다. 그는 카라바조주의caravaggisme라는 용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강렬한 자연주의적 화풍과 테네브리즘ténébrisme까지 나아가는 강렬한 명암 기법으로 17세기 화풍에 혁신을 가져온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카라바조가 그린 다윗과 골리앗은 보르게제 미술관 작품 외에도 프라도 미술관 소장품(1597-1598)과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품(1607), 총 세 작품이 있다. 세 작품 속 다윗과 골리앗의 모델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보르게제 소장품의 경우 화가가 다윗의 얼굴에 자신의 젊은 모습을 담고, 골리앗의 얼굴에 자신의 말년의 모습을 담았다는 의견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림 속 다윗이 머리채를 들고 있는 목이 잘린 골리앗의 얼굴을 보면 고개를 숙이고 눈도 감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있으며 양미간에는 주름이 지고 늙고 피폐하고 처량하다. 카라바조는 죽을 때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였지만 일찍 부모를 잃고 뒷골목 선술집을 드나들며 과격한 성격으로 적들을 만들고 싸움질에 살인까지 저지르고 도망자로 떠돌아다녀 굴곡진 삶의 끝자락에는 이미 지치고 병들고 쇠약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린 다윗을 보면 어린 나이에 갑옷도 입지 않고 칼이나 창도 쓰지 않고 물맷돌 하나로 거인 적장을 단박에 처치한 그의 얼굴에 승리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다윗은 신성 모독한 골리앗을 향해 분노나 증오, 멸시의 시선이 아니라 오히려 담담하면서도 애틋한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다윗이 손에 쥐고 있는 칼날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명구인 ‘Humilitas Occidit Superbiam겸손이 교만을 죽였다.’의 약어 ‘H-AS OS’가 적혀 있다. 아마도 카라바조는 다윗과 골리앗, 죽이는 자와 죽는 자, 두 인물에 모두 자신의 모습을 담아 자신 안의 교만과 악을 폭로하고, 그러한 자신의 교만과 악을 죽이는 겸손의 속죄를 고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