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은 마음을 일으켜주는 한 문장, “날아가라,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새해는 되었는데, 마음은 주저앉아 있었다. 그동안 계속 뭔가 하나씩 끼워 넣고 또 끼워 넣으며 더더더 하도록 나를 몰아붙여 왔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정성을 들일 에너지도 없어 기계적으로 닥치는 대로 때우다시피 한 것 같다. 새해에는 더 넣기보다 이미 있는 것들을 메우고 다듬어가야겠다 생각하며 쌓인 폴더들을 하나씩 열어보고 있었다.
베르디 연구 폴더를 훑어보다가 그의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제목인 첫 소절 앞에서 내 온 존재가 멈추었다. “날아가라,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li dorate)”, 이 문장은 어둠을 뚫는 한 줄기 빛처럼 내 안에 훅 들어오더니, 주저앉은 마음에 내밀어진 손길처럼 나를 일으켜주었다. ‘날아가라’, 한 마디에 내 마음도 금빛 나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사실 이 한 문장이 일으켜준 것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베르디에게도 그랬다. 베르디는 ‘나부코’, ‘리골레토’, ‘라 트라비에타’, ‘아이다’ 등 누구나 알만한 주옥같은 오페라를 작곡하며 오페라에 혁신을 가져온 위대한 작곡가다. 이런 위대한 베르디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의 후원자 안토니오 바레치를 만나고 부세토 시립오케스트라 지휘자, 음악학교 교장이 되고 바레치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하여 두 자녀도 낳고, 첫 오페라 곡은 거절되지만, 다음 작품인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1839) 공연은 호황을 누렸다. 바로 그때, 그에게 인생 가장 큰 시련이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아들과 딸이 갑자기 죽고 이듬해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다. 이 시련 속에 베르디가 정해진 계약 때문에 작곡한 코미디 ‘하루만의 임금님’이 하루만의 공연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계약도 파기하고, 작곡도 삶도 포기하려는 순간, 밀라노 스칼라 지배인 바르톨로메 메렐리가 건넨 ‘나부코’ 대본을 읽어 내려가다 히브리 노예의 합창 첫 소절에 이르는 순간 그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베르디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이 대본을 받아들고 가는 길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서글픔이 엄습해 왔다. 너무나 괴로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성급하게 대본을 넘겨보다가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의 날개를 타고’에 이르자 가슴 속에서 벅찬 감동이 차올랐다.”(이용숙, ‘오페라, 행복한 중독’)
‘나부코’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와 사슬에 묶여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마음을 떠나온 조국으로 띄워 보내며 고향산천에서 힘을 얻고, 고통 속에서도 신앙의 힘으로 인내하여 언젠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간절한 염원과 희망을 노래하는 곡이다.
베르디는 자신을 일으켜준 영혼을 울리는 히브리 노예들의 염원에 노래를 덧입혀주었다. 이 노래는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이탈리아인들에 통일 의지와 민족의식을 고취시켜주었으며, 수많은 이들에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날아가라,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이 한 문장이, 이 문장으로 빚은 베르디의 노래가 주저앉아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일으켜주는 손길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