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비

2025-03-20     충청일보

[충청시평] 김희한 시인·수필가

그녀의 집 창문은 짙은 청색유리였다. 아파트 1층인 이유도 있지만 닫힌 공간을 원한다는 느낌이었다. 가냘픈 몸매에 화장하지 않은 얼굴은 가을 산비탈에 핀 구절초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집에 웬만해선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식탁으로 나를 끌었다. 날이 궂으니 파전을 준비했단다. 그녀는 가끔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싶은 듯 한숨을 쉬기도 하고,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기도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목소리도 코스모스처럼 흔들렸다.

‘일곱 형제가 나란히 누웠다. 문풍지가 내는 소리가 황소울음처럼 들리면 나도 울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채다. 시끄럽다고 앙앙대던 식구들도 지쳐 잠을 청했다. 긴 울음을 잠재운 창호지 문이 뿌옇게 밝아지면 제일 먼저 일어나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문을 열면 얼룩진 벽이 원래의 문양인 양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입을 즐겁게 해야 하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불편하지 않게 도와주어야 하는 종이었다.

처음부터 없는 기능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남들과 조금 다른 방법을 쓰는 것뿐이다. 걷지 못하니 엉덩이를 썼다. 바지에 구멍이 빨리 났다. 바지를 앞뒤 바꾸어 입었다. 외출할 일도 없으니 상관없었다. 어머니의 무서운 눈초리는 구부려 사는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의 기억은 추위와 두려움이었다. 여덟 살 동생이 입학하던 날, 열 살인 나는 학교를 보내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나를 업어다 운동장 가의 층계에 내려놓고 갔다.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생활을 상상하던 나는 운동장에서 교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꽃샘바람이 수시로 얼굴을 때리고 손수건을 들치며 덩그러니 앉아있는 나를 놀렸다. 재잘거리며 소나기구름처럼 운동장으로 몰려나오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도 한 참, 연탄배달을 마치고 어둑한 층계로 온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업었다. 세 끼니를 거른 하루, 그날의 추위는 오랫동안 여름에도 나를 떨게 했다. 햇살은 과분하여 감히 가질 수 없는 양.

얼마 후, 동생 담임선생님이 가정 방문으로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공부하게 해 달라고 고집을 피우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일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첫 번째 일이다. 다른 형제들이 공부하는 걸 가만히 바라만 보는 나에게 어머니는 숫자를 가르쳤다. 공책과 연필을 쥔 배움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오빠나 동생이 읽다 밀어 놓은 만화책은 그림이 많아서 좋았다. 넘기면서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다. 상상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종이 속에서 춤을 추게 했다. 열한 살 때의 일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어머니는 내 긴 머리채를 자주 잡아 휘둘렀다. 불구자식을 낳았다는 것이 남편에게 늘 미안했나 보다. 잡혔던 머리가 아파 부엌문 앞에 쪼그리고 앉은 내 앞으로 털 검은 고양이가 지나갔다.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가볍게 건너가 햇살 한 줌 앉은 댓돌에 앉아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떠는 고양이 수염에 시린 삶을 얹으면 마음이 따뜻해질까.’ 하는 생각을 햇살에 널었다.

춥고 어두운 집을 나가고 싶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상가가 늘어선 대로까지 갔다. 아이들이 병신 나왔다고 돌을 던지고 발로 찼다.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세상, 거북이처럼 매를 피해 고개를 몸에 처박고 엉덩이를 끌며 돌아올 때, 맑은 구름이 떠가는 파란 하늘도 잿빛이었다. 대문이 가까워오는데 옆집 고등학생 언니의 시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구슬퍼서 눈물이 났다.

긴 머리칼이 작은 몸을 감싸며 같이 흔들렸다. ‘보리피리’, 문둥병자 ‘한하운’의 시라고 언니가 알려주었던, 죽고 싶어도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기 위해서라던 시인의 말을 떠올리던 순간, 속이 노란 배춧잎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엉덩이까지 찰랑거리는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싶었다.

비 잦은 7월, 찌그러진 종이상자 안의 마른 토란처럼 나는 추녀 앞에 처박혀 있었다. 넓은 잎으로 햇살도 받고, 두두두두 소리 내는 비도 받고 싶은 마른 토란 하나가 눈감고 빗소리를 들었다. 대문 밖 길가에 두 손바닥 크기의 웅덩이가 보였다. 나를 주눅 들게 했던 말들, 빗방울같이 수없이 떨어졌던 말들이 웅덩이에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공평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국수 가닥처럼 받아 잡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마당 한구석 낡은 비닐 포대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맞춰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녀가 파전을 더 부치려고 자리를 옮기는 사이 탁자 유리 아래로 눈이 갔다. 아기들의 사진이었다. 아들만 둘 낳았다더니 손녀들 사진을 두고 보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잡지에서 오린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 남자의 접근과 설렘, 결혼 후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로 이어졌다.

두 번째 만난 남자의 배신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죽어갈 때 살려준 한의원 원장에 대해선 천사라는 단어를 썼다. 말이 길어진 것이 미안했던지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파전이 특별하게 맛있다고 했더니 수줍은 듯 웃었다. 순간 ‘잘 살아냈구나’와 ‘잘 살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날이 개는지 창밖의 목련 잎이 옅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