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기한파에 은행권 고통 분담해야
경기침체 장기화로 은행과 2금융권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들이 높은 대출금리와 소비 부진 등으로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연체율도 이미 10∼11년 내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지만, 은행권은 지난해보다 임금 인상률을 높이고, 성과급 규모를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은행권 대출이 불어난 데다 높은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를 바탕으로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되면서 시중은행이 대출 가산금리를 소폭 인하한 것에 반해 예금금리는 시장금리 하락을 명분으로 큰 폭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등으로 최근 가계대출이 늘자 이달 은행들이 수요 억제를 위해 대출금리는 더 내리지 못한 채 추가로 예금금리만 최대 0.25∼0.30%p 하향 조정한 만큼, 예대금리차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예대금리차는 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받는 대출금리와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금리 간 격차로, 은행 수익의 본질적 원천이다.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산술적으로 이자 장사를 통한 이윤(이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에 공시된 '예대금리차 비교'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실제로 취급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는 1.30∼1.47%p로 집계됐다.
이 예대금리차는 서민금융(햇살론뱅크·햇살론15·안전망 대출 등) 상품을 빼고 각 은행이 계산한 결과다. 저소득·저신용 서민 대상의 정책금융 상품의 금리가 높아 이를 많이 취급할수록 예대금리차가 커지는 왜곡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은행별로는 NH농협의 예대금리차가 1.47%p로 가장 컸고, 이어 신한(1.40%p)·하나(1.40%p)·KB국민(1.33%p)·우리(1.30%p) 순이었다.
전체 19개 은행 중에서는 전북은행의 2월 예대금리차가 8.50%p로 압도적 1위 자리를 지켰다.
2∼4위의 제주은행(2.41%p)·한국씨티은행(2.36%p)·광주은행(2.18%p)·토스뱅크(2.16%p)도 2%p를 웃돌았다.
일반적으로 금리 하락기에는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빨리 내려 예대금리차가 줄어든다. 하지만 이번 금리 하락기에는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금리가 낮아져도 가계대출 급증 걱정에 대출금리가 묶여 있는 상태라 이례적으로 예대금리차가 뚜렷하게 커지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은행들은 줄줄이 예금금리만 낮췄다.
대출금리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맞물려 가계대출이 늘면서 다시 대출을 조이느라 금리를 낮출 수 없었다는 것이 은행권이 내세운 명분이다.
예대금리차를 바탕으로 한 이익은 고스란히 은행 직원의 연봉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이 발표한 ‘2024년도 사업보고서’에서 공시한 4대 은행 직원의 작년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1840만원으로, 전년(1억1628만원)보다 200만원 이상 늘었다.
희망퇴직자 특별퇴직금만 1인당 3억을 훌쩍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의 사업보고서에 계상된 희망퇴직 비용에는 특별퇴직금만 반영된 것으로, 실제 희망퇴직자들은 이에 더해 법정 퇴직금도 함께 받는다.
보통 법정 퇴직금은 퇴직 직전 3개월 월평균 급여(상여·수당 등 포함)에 근속연수를 곱해 정해지는데, 퇴직 당시 직급과 근속연수에 따라 보통 2억∼4억원대에 분포한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은행권 성과급도 전반적으로 전년 대비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은행이 잇따라 성과급 확대에 나선 것은 지난해에도 역대급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내수 부진에 정국 불안까지 겹치면서 일반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지는데, 은행권은 ‘이자 장사’로 최대 수익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높은 대출금리와 소비 부진 등으로 연체율이 10∼11년 내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닫고 있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은행권도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충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