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번복에 무너진 중소기업… 정책 따라 움직였다가 한순간에 나락

무궁화엘앤비'라벨지 피해업체' 첫 배상 성사 일회용컵 보증금제 철회 후폭풍… 7억 보상받아 세롬·오아시스물류도 구제 절차 진행 중 국회의 중재로 실마리 찾은 피해보상

2025-04-09     이한영 기자

정부의 돌연한 정책 철회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라벨지 제조업체들이 마침내 실질적인 구제 절차에 들어섰다. 

첫 피해업체에 대한 손해배상이 이뤄졌으며, 나머지 업체들도 법원의 조정 절차를 통해 보상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윤석열 정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연달아 유예하고, 끝내 철회하면서 발생했다. 보증금제 시행을 믿고 설비와 인력을 확충한 라벨지 업체 3곳은 갈 곳 잃은 물량과 함께 수십억 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이 가운데 ㈜무궁화엘앤비는 지난 2일 법원의 조정결정을 통해 조폐공사로부터 7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으며 첫 구제를 받았다. 이로써 조기 도산 위기에 몰렸던 업체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2020년 개정된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환경부는 2022년 6월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실행기관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COSMO), 운영 실무는 조폐공사에 위임됐다. 

이후 조폐공사는 2022년 4월 입찰을 통해 ㈜세롬(14억 장), ㈜무궁화엘앤비(6억 장), 오아시스물류㈜(배송)를 각각 낙찰자로 선정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각 업체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입찰을 신뢰해 대규모 설비 투자와 신규 고용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2022년 6월 시행 예정이던 제도를 12월로 미뤘고, 이후엔 시범운영 지역을 제주와 세종으로 축소했다. 급기야 2023년 11월, 전국 시행 방침을 공식 철회하면서 업체들은 투자를 회수할 수 없는 상태에 내몰렸다.

이후 조폐공사는 계약 물량의 4%에 해당하는 극소량만 발주했고, 수백억 원대 설비는 고스란히 업체의 손실로 남았다.

라벨지 피해업체 세 곳은 지난 2월, 조폐공사를 상대로 모두 7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무궁화엘앤비는 7억원의 배상으로 피해를 인정받았다.

오아시스물류는 3000만원의 조정금액에 대해 양측 모두 이견이 없지만, 조폐공사와 COSMO 간의 책임 분담 비율 산정을 위해 법원에 이의제기가 된 상태다. 세 업체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세롬은 현재 광주지방법원 조정센터에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번 피해 구제는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의 중재를 통해 실마리를 찾았다. 이용우 의원(환경노동위원회)과 황명선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은 책임의원으로서 환경부, COSMO, 조폐공사를 상대로 협의를 이끌어냈다.

이용우 의원은 "폐기물 감축이라는 중대한 국가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철회한 정부의 책임은 매우 무겁다"며 "관련 기관들은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도 높게 지적했다.

황명선 의원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철회한 정책으로 죄 없는 중소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놓인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며 "정부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남은 피해업체들도 조속히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 탄원서 제출, 중재 노력, 신속한 절차 유도 등을 통해 첫 결실을 맺은 이번 조정 사례는 정책의 일관성과 공공기관의 책임 문제를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남은 두 업체에 대한 조정 결과가 향후 정부-민간 계약에 있어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계룡=이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