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결혼식 날

2025-05-11     충청일보

[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꽃들이 지천에 피는 봄날이 되면 법정 스님의 법문이 떠오른다. 길상사의 봄 법회 때에 법문 마지막을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니 나머지 이야기는 저 찬란하게 피어나는 꽃들에게 들으시라” 이 봄 한철 꽃을 피우기 위해서 묵묵히 자기 몫을 다했을 꽃들이 앞다투어 피는 봄이다. 봄이 되면 나는 그 법문을 다시 음미하게 된다. 꽃들은 묵묵히 피고 묵묵히 진다. 다시 가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 모든 것을 다 내맡긴다. 생과 사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의 생에 최선을 다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꽃들에게 배우라는 깊은 뜻이었다.

목련꽃이 순수한 여인의 자태로 피는 4월이다. 고결한 순백의 목련화가 우아하게 버진로드를 즈려밟고 있다. 웨딩마치와 함께 축하 박수에 솜털 보송한 목련꽃 봉우리가 꽃잎을 열고 있듯이 아름답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소녀였었는데 오늘 어여쁜 신부가 되어 여인이 되는 길을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늠름한 신랑 조카는 신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연애사를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린 조카가 어느덧 커서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대견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두 사람이 직장의 동료에서 친구가 되고 친구에서 연인이 되어 보냈던 긴 여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또한, 미래에 짊어지고 갈 한 가장의 무게도 미리 안쓰러워졌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책을 보는 조카의 모습에 마음을 뺏기게 되었다는, 어린 신부 조카며느리는 방글방글 미소를 짓고 신랑은 시종일관 벙글벙글 웃는다.

우리 집 막내딸로 언제나 어리게만 보였던 동생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제부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 모습이 처음으로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다. 집안 어른들과 동기간들 그리고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인사를 받고 있는 동생 부부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집안의 제일 어른이신 우리 엄마는 구순의 노인답지 않게 곱게 단장을 하시고 손주의 결혼식에 참석을 하셨다. 집안 동기간들은 건강하신 모습으로 참석하신 엄마를 보고 고맙고 반가워서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집안의 경사에 제일 어른이신 엄마가 중심에 계시고 앉아 있는 모습이 든든하고 감사했다. 엄마는 오늘 더 화색이 고우셨다.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집안 동기간들을 두루 만나보셔서 흐믓해 하셨다. 가족사진을 찍는 시간이 되었다. 신랑 신부와 구순의 엄마를 위시로 양쪽에 가족과 동기간들이 서서 활짝 웃는다.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고모의 큰아들도 예식이 끝날 무렵에야 도착한 듯 비집고 들어와서 함께 김치! 하며 웃는다.

가족이란 동기간이란 무엇인가! 서로 안부를 물어볼 새도 없이 자기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간다. 누군가는 성공을 하고 누군가는 사업이 어려워져서 건강도 잃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집안에 애경사 때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픔을 나눈다. 비바람이 불면 큰 나무 아래로 다 같이 모여서 비를 피하듯이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올해 어버이날에도 동생들과 카네이션 꽃화분을 들고 아버지가 계신 가족 납골당에 가서 꽃을 올리고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만드신 가족 납골당 비석에 용비어천가 2장의 뜻을 인용하셨다. ‘조상님께 바치는 글’이라는 제목 아래에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샘 없는 강물 없다”라고 쓰셨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오래 마르지 않고 강으로 흐른다. 묵념을 하면서 자손 대대의 번성과 번영을 기원하는 그 깊은 뜻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