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의 국가건전재정 공약실종
[김효겸의 세상바라보기] 김효겸 전 대원대 총장
대선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각 당 대선 후보들이 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2024년 말 국가채무가 1300조 원에 육박했다. 국민 1인당 2600만 원 꼴이다. 전세계 국가부채순위는 13위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안 보인다. 2022년 대선에선 국가 채무를 480조원이나 불린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 의식하면서 건전재정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건전 재정’이란 말 자체가 실종됐다. 국민의힘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재정 준칙 도입’을 약속했고, 민주당도 ‘국가 재정의 효과적 사용’ ‘합리적인 재정 운용’을 공약했을 뿐이다.
민주 이 후보는 아동수당 18세까지 확대, 농촌 기본소득 지급, 소상공인 부채 탕감, 요양병원 간병비 건강보험 지원 등을 약속했다. 국힘 김 후보도 디딤돌 소득 전국 확대, 근로소득세 기본 공제 확대,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 등을 공약했다. 두 후보의 선심 공약을 이행하려면 이 후보가 100조 원, 국힘 김 후보가 70조 원 이상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이 후보 측은 “재정 지출 구조 조정분, 2025~2030년 연간 총수입 증가분 등으로 충당”, 김 후보 측은 “기존 예산 재조정, 국비·지방비·공공기금 활용, 투자 유치” 등이라고 하는데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라고 판단된다.
현재 국가 재정 상태는 더 이상의 퍼주기 정책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 매년 100조 원 안팎의 재정 적자가 발생하고 있고, 경제성장률은 1%대로 추락했다. 저출생·고령화로 납세자는 점점 줄고 있다.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을 3% 이내에서 관리한다는 재정 준칙을 5년 연속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 만성 재정 적자국이 되면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54.5%)이 올해 처음으로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경고도 나왔다. 재정 건전성은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한국 경제로선 최후 방어선이나 다름없다. 외환 위기도 재정 건전성 덕분에 넘길 수 있었다. 수권 정당으로서 표를 호소하려면 ‘건전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약속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해외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공공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 성장과 투자 환경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 규율을 강화해 이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논문 제목인 ‘재정침체(Fiscal Stagnation)’는 높은 공공부채가 경제 성장을 저해해 부채 부담을 늘리는 악순환 구조를 가리킨다. 임계점을 넘어선 공공부채는 투자 위축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세수를 감소시킨다. 과도한 공공부채라는 충격이 일단 터지면 파동이 사라지지 않고 장기 성장률을 점진적으로 떨어뜨리는 등 경제에 계속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이력현상(hysteresis)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어느 대선후보가 지난 21일 인천 유세에서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한국의 나랏빚이 선진국보다 훨씬 적다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일부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예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앙·지방정부 부채와 비영리공공기관 부채까지 합한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미국(122.5%)·일본(234.9%)·프랑스(116.3%) 모두 100%를 넘긴 반면, 한국은 절반 수준인 54.5%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순 숫자만 비교하는 건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달러·엔·유로를 기축통화로 쓰는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나랏빚 증가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는 점에서 더 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후세대에게 빚을 안겨주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