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마사지사’-낡은 자아 거푸집 위에 재건되는 자아의 미학적 탈피
[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5월 23일 ‘문학실험실’ 후원모임에 ‘비주얼씨어터 꽃’ 연출가이자 배우 이철성의 ‘한 사람을 위한 마사지사’ 공연이 있었다. 관객이 직접 마사지 고객으로 참여하는 이 공연에서 고객이 무대에 편한 자세로 옆으로 눕자 배우 마사지사는 사람 몸보다 큰 종이를 고객에 덮은 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두 손으로 정성껏 마사지를 해준다. 전신 마사지가 마무리되자 마사지사는 고객의 몸 형체가 고스란히 남은 종이거푸집을 들어 바닥에 두고 거기서 얼굴 부분만 동그랗게 잘라둔다. 고객은 종이에 새겨진 자기 몸 형체를 감상하고 그 종이 위에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는다.
마사지사는 종이거푸집 얼굴 부분의 빈 구멍 안으로 고객이 적어둔 문장을 큰 소리로 들려주고, 고객도 종이거푸집 얼굴 구멍에 대고 자신에게 쓴 글을 직접 큰 소리로 들려준다. 마사지사는 잘라둔 얼굴 부분 종이에 고객의 코와 입 모양을 그린 뒤 마스크로 만들어 고객 얼굴에 씌워주고 앞이 보이지 않는 고객의 손을 잡고 안내해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 고객 혼자 남겨둔다. 잠시 후 다른 관객 한 명이 참여하여 혼자 서 있는 고객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안아준다.
마사지사가 하모니카를 불며 안고 있는 두 사람 둘레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두 번째 참가자는 마사지 고객의 마스크를 벗겨주고 함께 손을 잡고 다른 관객들 곁으로 오고, 마사지사와 고객은 처음 장소로 와서 종이거푸집 위에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주는 것으로 공연이 끝이 난다.
이철성의 ‘마사지사’는 인간의 자아 응시, 자기 돌봄, 인정과 환대의 경험, 자아의 재건을 예술적 상징으로 풀어낸 신체 기반 퍼포먼스다. 고객은 마사지 받고 난 뒤의 종이에 남은 자기 몸의 흔적 앞에서 일상적으로 쉽게 거리를 두고 보기 힘든 자기 존재의 외형적, 감각적 실재를 마주하게 되며, 낯선 내 몸을 보는 ‘몸-자아’로서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게 된다.
얼굴이라는 가장 표면적이고 즉각적인 정체성을 비우고 내 빈 몸에 나의 소리를 채워 넣을 때, 나에 대한 인식은 쉬이 휘둘리는 시각에서 청각, 촉각으로 번져나가 ‘감각적 몸의 깊이’로 확장된다.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고, 듣고, 직접 들려주는 행위는 우리 내면을 어루만져주며 나의 이야기를 회복하는 의례이다.
내 몸 안에다 말을 걸 때, 지나온 세월 무너지지 않고 버텨온 나 자신에게 위로와 사과, 소망과 다짐으로 어루만져주는 자기 돌봄이 시작된다. 내 빈 몸에 말을 걸고 목소리를 채워 넣는 것은 그동안 가 닿지 않았던 내 안 미지의 장소, 아직 침묵하고 있는 내 안의 어떤 부분을 깨워내는 자기 호명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남이 해주는 정성스러운 마사지, 먼저 다가와 나를 감싸주는 타인의 포옹, 남이 내 가면을 대신 벗겨주는 행위는 조건 없이 타자에 내가 받아들여지는 환대이자 나의 공간을 타자에 내어주는 열림이다. 공연의 마지막, 빈 몸의 종이거푸집이 서서히 사그라질 때, 관객-고객은 낡은 자아의 종언 위에 재건되는 자아의 미학적 탈피, 그 경이로운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