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지나간 이야기)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유난히 머리가 커서, 눈이 안쪽으로 몰려서, 몸이 뚱뚱해서 고민인 연예인들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패널들은 고민을 털어놓고 해결책을 묻는다. 진행자들과 관객들은 기발한 입담으로 녹화장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사례자를 대신해서 진행자가 사연을 읽고 난 후 당사자는 미끄럼틀을 이용해 등장한다. 객석에는 사례자를 고민에 빠뜨린 인물이 앉아 있다. 그는 얼마나 당당한지 세상에 그게 무슨 고민거리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연신 해댄다. 진행자, 패널, 객석의 야유가 거세질수록 사례자와 대립 구도를 이룬다. 그쯤에서 패널과 관객들이 투표를 한다. 사연이 고민이라 생각되면 버튼을 누르고 전광판의 숫자가 올라간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고민이 큰것 인데 그때 고민 유발자는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하여 사례자를 끝내 눈물 흘리게 한다.
우리 가족은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나와 같은 생각이다. 세 사람은 죽이 척척 맞아 가족 중 한 사람인 남편을 지목하며 타도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고민 신청하기로 한다. 그러면 남편은 그것은 애정 표현이며 아이들이 자라서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고 너희들도 그런 아빠가 되어야지 한다. 나에게는 부부지간에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묻는다. 물론 추억이고 당연한지는 몰라도 정도가 지나쳐 가끔 남편의 뺨을 밀치기도 한다. 이렇게 구타 유발까지 하는 고민거리는 남편의 뽀뽀 본능이다. 이 남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입을 내밀고 뽀뽀하잔다. 아이들이 있거나 양가 어머니가 계셔도 마찬가지다. 노상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만 아빠가 큰아이 쪽으로 가면 기겁을 한다. 물론 중학교 1학년인 작은 아이는 눈 뜨며 부터 아빠와 하루종일 쪽쪽 거린다. 장난치며 뒹굴고 잠도 함께 잔다. 학교 갈 땐 아빠, 엄마가 배웅하며 볼과 입술이 닳도록 뽀뽀하고 나면 아빠와 주먹을 쥐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두 사람만의 의식 같은 행운 이별 인사를 한다. 작은 아이에겐 고민까지는 아닌가 보다. 하지만 큰 아이는 다르다. 고등학교 2학년인데 작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아빠와 입을 맞추고 아침마다 이별 의식을 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어색해졌다. 아빠는 그에 굴하지 않고 완력을 써 보지만 힘이 세어진 아이를 어쩌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는 매일 부모와 동생을 챙겨주고 쓰다듬는다.
큰 아이의 학교 발표회 때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까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옆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던 아이가 아빠에게 다가와서 땀을 닦아주는 모습을 보고 다른 아빠들이 부러워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부모와 교감하고 형제지간에도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양가 할머니를 만나면 사랑이 넘치는 얼굴로 꼭 안으며 볼에 입맞춤한다.
어느새 우리 가족의 고민이 장점이 되어버렸나 보다. 살면서 곱지 않은 순간도 있지만 그 끝이 짧고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고민 신청하지 않았지만 ‘안녕하세요’는 자연스럽게 해답을 준다. ‘행복한 고민입니다.’
지나간 이야기는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느라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이 힘겨운 날, 그리움이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