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정부의 국민에 바람
[세상을 보며] 안용주 전 선문대 교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고?
‘안다’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을 ‘모른다’의 반대말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 자신에 대해 이런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
‘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와 같은 말이다. 유행가에 나오는 ‘내 마음 나도 모르게~’처럼 말이다.
‘안다’는 것은 사전적 의미로는 “교육 혹은 경험, 사고(思考:생각하고 궁리함) 행위를 통해 정보나 지식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실이나 존재, 상태 등에 대해 의식(意識) 혹은 감각(感覺)을 통해 깨닫거나 느끼는 것”이다. 키워드는 “사고(思考)행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사고(思考)하는 과정을 통해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는 행위 없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른다’와 동일하다. 바꿔 말하면, “대충 알고 있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 사고(思考)하는 것’은, ‘한 가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많게는 수십가지의 변수(정보)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판단, 해결책을 도출해 내는 활동’이 반드시 수반(隨伴:붙좇아서 따름)될 때 비로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이렇게 경고했다.
잘못된 지식을 경계하라. 그것은 무지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Beware of false knowledge: It is more dangerous than ignorance.)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며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에 대해, 대통령 후보시절에 우리는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 장모 최은순씨의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등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의혹과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를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그 ‘설마’는 3년 후에 비상계엄을 통해 군인들을 국회로 보내 국회를 무력화 시키고, 국민의 일상을 짓밟는 스탈린, 히틀러에 비견되는 ‘학살자’의 면모를 과시(?)하는 사태까지 치달았다.
토론은 없고, 심의도 없는 오직 ‘지배(支配)’만이 강요되는 군주(君主) 밑에서 총·칼 대신 법(法)이라는 기술자를 동원해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북한을 충동질해서 국지전(局地戰) 유발을 기획하는 등 국민(國民) 보다는 부인과 장모를 지키는데 모든 권력을 쏟아붓는 무능함을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그가 취임한 2023년부터 31년간 지켜온 대중국 무역흑자가 적자로 바뀌었고, 군사정권시절인 노태우정권에서 포용한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면서 현대자동차는 4,100억 러시아공장을 14만원(1만 루블)에 현지 업체에 매각하고 전면 철수했다.
윤석열의 무능과 아집(我執: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내세워 버팀)은 국민의 일상을 무너뜨렸고, 대중(對中)수출 적자를 비롯한 수출급락은 내수경기를 급속하게 둔화시켜 장기불황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보수는 썩었지만 경제는 잘 안다.’고? 김영삼정부가 일으킨 IMF를 극복한 것은,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글로벌금융위기(2007)를 극복한 것은 검사들이 고졸(高卒)이라고 비웃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이었으며, 글로벌팬데믹(코로나19)을 극복하면서도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할 때 1.4%의 플러스 경제성장률을 지켜낸 것도 진보정권인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보수는 썩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도 쥐뿔도 모르는 무능정권”이라는 공식을 창출해 냈다.
윤석열이라는 괴물정권은 거기에 비상계엄이라는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하지 못한 핵폭탄을 한국경제에 투척했고, 새로 취임한 국민주권정부는 뒤틀어진 대중국, 대러시아, 대미, 대일관계까지 정상으로 돌려야 하고, 국내적으로는 장기불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경제를 살려내야 한다.
다행이다. 국민이 국가를 살렸다.
폭군(暴君) 밑에는 언제나 그럴싸한 법(法)을 가져와 폭군을 떠받치고, 출세와 제 살길만 쫓는 법꾸라지들(法匪)과 소위 엘리트들이 항상 들끓었다. 을사오적이 그랬고, 윤석열이 그랬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권력만을 좇았던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빈사지경에 빠뜨렸지만, 현명한 국민(國民)은 빛의 혁명을 통해 구국(救國)의 경지를 보여줬다.
국민주권국가의 방향타를 잡은 이재명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권력(權力)이 아닌 권한(權限)을 요청했다. 대한민국을 살릴 골든타임에 성남시장 시절부터 중학교 대신 노동현장에서 경험한 차별과 불공정을, 시정(市政)을 통해 바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가 대한민국호(號)의 방향타를 잡은 것은, 아직 우리의 국운(國運)이 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고민은 또한 국민이다. 아직도 대구·경북, 부·울·경을 대표로하는 영남권은 반이재명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이들에게는 한국의 미래보다는 과거의 이데올로기가 더 중요해 보인다.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댄 내란세력에게 41.15%라는 열렬한 응원을 보낸 부끄러움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들을 포함한 국민주권정부를 탄생시킨 국민 또한 인수위원회를 꾸릴 시간조차 없이 출발한 새정부에 대해 엄청난 기대와 벼락같은 변화를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대통령을 탄생시킨 진보세력이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던 것처럼, 국민주권정부를 탄생시킨 빛의 시민이 기다림에 지칠까 두렵다. Waiting can be a difficult process. 기다림은 때때로 힘든 과정이다. 하지만 전 정부가 저질러놓은 뒤처리에 하냥 세월을 보내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기다리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