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돈의 한계효용과 공매도
[목요사색] 정우천 흥덕문헌연구소장
동일한 물건도 시간이나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어린 시절에 가치 있던 장난감이 어른이 된 지금은 별 가치가 없을 수 있고, 어른이 좋아하는 돈이 어린이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열대지방의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얼음 한 덩이와 북극지방의 얼음 한 덩이의 가치가 같을 수 없다. 조난해 굴속에 갇힌 광부에게는 먹을 수 없는 금덩이보다 밥 한 그릇이 훨씬 더 가치 있을 것이며, 목마른 자에게 천금 같은 가치가 있는 물이 물고문당하는 이에게는 두려운 고문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걸맞게 필요한 것을 잘 준비하고 활용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주식 투자 기법에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를 이용해 이득을 보는 공매도(空賣渡)라는 투자 기법이 있다. '없는 것을 판다'는 의미로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재화의 소유권을 미리 팔고, 나중에 미리 판 것만큼을 사서 채우는 것인데 나중에 가격이 내려가면 그만큼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공매도는 현재보다 나중에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거래를 하는 것이고, 미리 판 것만큼 나중에 사서 갚으면 되기 때문에 가격이 내려가면 이득을 본다. 물론 반대로 현재보다 나중에 가격이 더 오르면 손해를 보게 된다. 당연히 재화의 미래가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전제로 하고 잘못되면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들이 학창 시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과감하게 금전적 지출을 하는 것을 보고 뭐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아들은 학생인 지금의 자기에게 돈의 가치는 나중 돈을 벌게 될 때 돈의 가치에 비해 훨씬 가치가 있으니, 지금 당겨서 꼭 하고 싶은 곳에 쓰고 나중에 돈을 벌게 될 때 자신에게 덜 가치 있는 돈으로 갚으면 그게 이득이라고 말했었다.
주식 투자의 공매도 원리와 비슷한 말이고,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하는 사회통념과 생활 태도를 생각하면 그렇게 이해할 만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합리적인 설득력은 있었던 기억이 있다. 물과 공기는 너무 흔하게 존재하므로 중요성에 비해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다이아몬드 등은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크게 평가받는다. 이렇게 어떤 물건이 점점 많아질수록 그 물건의 가치는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 경제학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이 길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가진 넘치는 시간을 소모해 그것을 돈으로 바꾸려 한다. 아직 건강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 건강을 해치며 돈을 버는 데 몰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가 뒤바뀐다. 돈보다 건강이 중요하고 하루하루 줄어드는 시간은 더욱 소중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서는 젊은 시절 돈을 위해 버린 건강을 찾기 위해, 한때 그렇게 열심히 모았던 돈을 또 아낌없이 쓴다. 그리고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여행 등의 여가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어떤 재화는 당겨쓰거나 늦춰서 쓸 수 있지만 시간처럼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재화도 있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의 소중함을 새기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