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로부터 벗어나야

2025-06-19     충청일보

[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비가 내린 후 하늘에 듬성듬성 드리워진 하얀 뭉게구름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낸다. 6월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라지만 유난히 기상 변화가 두드러져 벌써 한여름에 다가선 듯 무더워졌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상승하여 한낮 기온이 30°C를 오르내리는 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는 불편한 계절이 찾아왔다. 매화와 산수유가 봄을 알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푸른 초목이 우거진 대지 위에 다채로운 꽃이 피어났다. 작고 오밀조밀한 봄꽃과는 달리 여름 꽃은 제각기 다른 크기와 강렬한 색깔로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내년을 기다려야하는 꽃들이 아쉬워서 가슴속 깊이 가득 담고 싶은 마음이다.

한강공원에 넓게 펼쳐진 꽃밭에서 활짝 핀 붉은 개양귀비 꽃이 강변의 고층 빌딩과 잔잔하게 흐르는 푸른 강물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 하늘하늘하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모습에서 진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따뜻한 햇볕을 좋아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개양귀비는 들판이나 산책길에서 가까이 볼 수 있어 더욱 친근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에서 피어났던 개양귀비는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상징적인 꽃이다. 해가 질 무렵 들판에서 위로와 위안, 전장에서 쓰러진 병사라는 꽃말처럼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주는 듯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얼마 전까지 진짜냐 가짜냐 화두로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였던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아무리 정권 쟁취가 목적일지라도 모름지기 정치에는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 성장과 안보, 분배와 평등의 문제 등 유권자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를 정하는 것이 선거의 본질이다.

그러나 약점이나 결핍을 감추기 위해 자신들이 진정한 진짜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거칠어지고 본질이 흐려졌다. 한쪽이 진짜라고 주장하면 다른 한쪽은 자신이 진정한 진짜라고 강조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어 격렬하게 공격하였다. 진짜와 가짜의 모호한 경계와 정체성을 구분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진짜라고 외치는 주장이 공허하고 위험하게 들리는 것이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 전반에 걸쳐 극심한 갈등과 분열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이념의 문제, 과거 역사의 해석 방법, 외교 문제의 접근 방법, 북한 문제의 대처 방법, 성장과 복지의 선후의 차이 등 이유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또한 남자와 여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부자와 가난한 자, 종교적 신념 등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갈등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각각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은 도리어 나라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름과 차이를 구분하고 인정하는 성숙한 자세가 바람직하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랑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역설적이다. 편애는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 사건 중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들 편애가 대표적이다. 야곱은 아들들 중 제일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첫째 아들 요셉을 지나치게 사랑한다. 이는 다른 아들들과 사이가 서로 갈라지고 악에 받쳐 죽일 마음이 들 정도였다. 급기야 요셉은 형들에게 살의를 느껴 달아나게 되고 결국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이 된다. 야곱은 사랑하던 요셉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다시 막내 베냐민만을 사랑한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대흉년이 들어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왔을 때 금세 형들인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총리는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면서 다른 아들 시몬을 볼모로 붙잡는다. 결국 야곱은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는 말로 고통스러운 결단을 하면서 막내를 내어놓는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내려놓는 것을 보면서 아들들은 지금까지 받은 상처가 아물어지고 아버지를 이해한다. 야곱이 아들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서 서로 하나가 된다. 아들들이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함께 애굽 총리에게 탄원하면서 형제의 사랑을 회복한다. 이를 통해 지나치게 아들들을 편애하여 분열되었던 가정의 문제에서 벗어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회사와 가정 등 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은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편애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전부 옳고,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틀이 문제다. 이런 태도가 대화의 문을 잠그고 생각의 소통을 방해하여 결국 둘로 셋으로 나눠지게 한다.

이런 문제를 치유하고 통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리 편 너희 편을 가르는 편견과 편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상대가 어느 쪽이나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잘한 것을 잘했다고 칭찬하고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비판하고, 때로는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는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하다.

며칠 전 휘트니스센터에서 만난 연세가 지긋하신 지인이 요즘 보고 듣는 것마다 늘 새롭게 느껴지고, 이 순간이 다시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불현 듯 이 말이 떠올라서 몇 년 전에 다녀왔던 양평의 초록이 우거진 숲을 찾아갔다. 햇살이 따뜻해질 때 피어나는 수국은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듯 풍성하고 탐스러운 꽃송이를 피워 올린다. 주변에는 보랏빛 라벤더가 순수와 기대를 담은 채 침묵하며 그윽한 허브 향을 발산하고 있다. 여린 듯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샤스타데이지가 하얗게 쌓인 눈처럼 하얀 물결이 넘실넘실 밀려오는 기분이다. 이 꽃들을 바라보는 순간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는 듯 한없이 마음이 편안하다.

파란 하늘 아래 짙푸른 초록이 펼쳐진 대지의 풍경이 정말 신선하고 황홀하다. 비에 씻긴 나뭇잎과 풀잎이 더욱 푸릇푸릇하고 깨끗한 느낌이다. 이 장대한 광경은 대자연이 만들어준 하나의 큰 축복이 다름 아니다. 잎사귀가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비치는 산책로를 걸어가는 순간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태양이 떠오르는 수평선을 향해 떠나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혼란스럽고 불편한 세상사에서 잠시 벗어나서 순수의 여정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진정 이 세상이 편견과 편애로부터 벗어나서 인간 본연의 순수한 사랑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하는 초여름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