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조종하는 사기 예방하기
[생활안전이야기] 동중영 정치학박사·한국경비협회 중앙회장
지금의 사회는 이전보다 더 투명하고 정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발전한 기술을 이용한 정교하고 은밀한 범죄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범죄가 사기이다. 사기는 단순한 거짓말 수준의 행위를 넘어, 상대방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하고 신뢰를 악용하여 자산을 탈취하는 지능형 범죄이다. 오늘날의 사기 범죄는 ‘속임수 또는 기망’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할 만큼,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고 마음을 조종하며 결국 피해자의 삶 전체를 엉망으로 만든다. 심지어는 생명을 잃게도 만든다.
기술과 정보가 발전하면서 사기의 방법도 빠르게 변화해 왔다. 과거에는 허위 정보를 흘리거나 거짓말을 통해 상대를 속이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제는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 구조와 상황 설정을 통해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범죄자들은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실존 인물과 제도, 기관을 교묘히 조합해 극도의 현실감을 부여하며 피해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이 모든 연출은 실제상황과 같으며, 범죄자는 철저한 각본 속에서 피해자가 자신에게 종속되도록 만든다.
이런 사기범의 특징은 피해자의 심리를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내라”는 요구가 아니라, 처음에는 작은 친절이나 유익한 정보 제공으로 접근해 신뢰를 쌓고, 이후 그 신뢰를 기반으로 피해자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는 마치 자신의 선택으로 행동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며, 나중에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일부 범죄자들은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여 심리적으로 압박하기도 한다. 이는 사기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심리 조종의 형태로까지 자연스럽게 진화한 융복합화된 사기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기 범죄가 통신 수단의 발달로 일상 속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화, 문자, 이메일은 물론, SNS와 메신저, 심지어는 대면 관계까지 사기의 통로로 활용된다.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특히 경제적 불안정, 외로움, 혹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있는 사람일수록 표적이 되기 쉽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 체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험 요소다.
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더욱 절실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경각심과 정보 판단이다. 의심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 반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사실 여부를 냉정하게 검토하고, 필요하면 전문가나 주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설마 내가 당하겠어’라는 안일함은 가장 큰 틈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도 예방 교육과 정보 공유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범죄 수법이 진화하는 만큼, 그에 맞선 대응 역시 진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기 범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악용하고, 피해자 자신을 자책하게 만드는 심리적 폭력이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피해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까지 침해하는 행위다. 우리 사회가 사기로부터 안전하려면, 개개인이 정보 판단에 신중해야 하며, 동시에 주변과 함께 피해 사례를 소통하여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를 당했을 때 집단으로 대응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사기는 결코 나약하거나 부주의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 선조들의 지혜를 거울삼아 경각심을 일상화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기의 유혹을 뚫고, 신뢰의 사회를 지켜내는 가장 현실적이자 강력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