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과 변방
[목요사색] 정우천 흥덕문헌연구소장
며칠 전 통조림과 주스 생산의 대명사인 미국기업 ‘델몬트 푸드’가 경영난으로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고 한다. 오렌지 주스로 유명하고 장년층에게는 쓰고 난 주스 병에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는, 이른바 ‘국민 물병’이었던 기억이 생생한 델몬트사가 139년 만에 역사의 뒤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며 영원할 것 같은 기업이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몰락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불과 2, 30년 전에만 해도 휴대전화 시장의 최강자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으로 바뀐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시장에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디지털카메라 이전의 코닥도 세계 최고의 카메라·필름 제조기업이었지만 필름 시장을 고집하며 망설이다 결국은 2012년에 파산했다. 스포츠나 연예계나 세상은 늘 그렇게 주인공이 바뀐다. 한때 적수가 없을 것 같은 스포츠계의 스타도 새롭게 나타난 강자에 밀려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미녀의 상징으로 빛나며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여배우들도 세월이 가면 역할을 바꿔 새롭게 나타난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로 전락하고 만다.
자연계나 인간 세상이나 모든 흐름은 늘 비슷하게 진행한다. 중심과 외곽의 세력 이동과 그 반복이 세상의 본모습이다. 중심의 기득권에서 소외돼 외면받고 저항하던 외곽의 소수는 점점 힘이 강해져 기득권을 밀어내고 그 자신이 중심이 된다. 그렇게 중심이 된 세력은 이제 또 다른 기득권이 되고, 그에 반발한 또 다른 외곽의 소수자가 생긴다. 이렇게 소수자가 기득권이 되고 그에 반발한 또 다른 소수자인 변방이 생기는 형태로 역사는 반복 진행한다. 국가나 조직의 역사뿐 아니라 개개인의 역사도 이렇게 진행한다.
서구 중심의 세계관이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류사의 중심 바다는 지중해에서 대서양 그리고 태평양으로 지구의 자전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왔다. 헬레니즘이 융성하고 로마가 세계의 중심일 때는 지중해가 세계의 중심이었다. 이후 대항해 시대와 신대륙이 발견되던 시대에는 대서양으로 세계의 중심이 바뀌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이 G2인 시대에는 태평양이 가장 중요한 바다가 되었다. 1492년 신대륙 발견으로 꽃을 피운 대항해 시대는 유럽의 변방이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항해의 중심이 되며 열린다. 그 후 불과 몇백 년 만에 이 낯설었던 미지의 신대륙은 세계의 중심이 된다.
문예사조인 예술의 흐름 또한 이와 같다. 고전주의가 득세하다 낭만주의로 주류가 바뀌고 다시 사실주의를 거쳐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바뀐다, 외곽에서 주류를 비판하며 힘을 키우던 소수가 주류가 되고 그 또한 다시 나타난 다른 세력에 밀려 외곽으로 자리를 바꾼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순리에 따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물러나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가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쓴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아직도 사랑받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