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국(戰國)시대, 전략적 각성이 필요하다
[충청의창] 이강록 우송대학교 교수
오늘날 우리는 총성 없는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치열하고 근본적인 전선은 경제, 무역, 외교의 영역에서 형성되고 있다. 무역 장벽과 관세 전쟁, 공급망 재편, 안보 동맹의 재구성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세계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국의 변화된 패권 전략이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표방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는, 관용보다는 냉정한 이익 중심의 세계 질서를 가속화시켰다. 관세 인상과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압박, 자주국방 요구 등은 모두 추락하는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전략적 몸부림으로 읽힌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흐름이 미중 간 패권경쟁이라는 구조적 대결 구도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략적 초조함은 동맹국들에게도 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외교 원칙과 규범들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국제 질서는 지금, 근본적인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산업 시대가 도래하며, 많은 이들이 이 시기를 ‘대결의 시대’로 예측했다. 그 예언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흔들리며, 권력의 균형이 다극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신(新) 전국시대’에 들어섰다. 각국이 동맹과 경쟁을 반복하며 권력을 재편했던 고대 전국시대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 세계의 정세를 먼저 통찰하여 해법을 깨닫는 나라들만이 이전투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과거의 이념과 명분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없다. 세계 질서의 재편과 문명의 방향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위에서, 우리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국이 비즈니스 언어로 외교와 무역을 말한다면, 우리도 그에 맞는 실리 중심의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대상들과도 전략적 유연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전략적 모호성과 냉철한 결단이 동시에 요구될 수 있다.
또한, 산업 전략 역시 재정비가 필요하다. 여전히 우리가 구태의연하게 구사하고 있는 추격자 전략, 즉 ‘2위 전략’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이 담보되지 않는다. AI 기술을 비롯한 미래 핵심 산업에 대한 도전적 투자와 주도적인 전략 수립 없이는, 현재의 위상도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실리적 국제 전략과 도전적인 기술 전략이 함께 어우러질 때, 대한민국은 새로운 전국시대의 생존자이자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 각성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