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물에 잠길까 봐 한숨도 못 잤어요"…장대비에 노심초사

2025-07-17     조은영 기자

2023년 트라우마 안고 밤 지새운 오송 주민들
북이면 주민들 집단 대피… 옥산면 논밭 잠기며 농민들 '망연자실'

17일 오후 호우로 인해 미호강 물이 불어나 강변 자전거 도로 표지판이 물에 잠기고 있다. /조은영기자

"장대비가 새벽 내내 쏟아져 내리니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잤어요."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서 만난 A씨(83)는 전날부터 내린 장대비가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23년 참혹한 물난리를 겪었던 그날의 충격과 불안이 빗소리에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해 오송읍 일대는 폭우로 강이 범람하면서 주택과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A씨도 당시 집 안까지 물이 들이닥쳐 삶의 터전을 잃을 뻔한 아찔한 경험을 했다.그는 "그땐 여기저기서 누구네 집이 침수됐네, 농사 다 망쳤네 하는 소리만 들렸다"라며 "이제야 좀 살만해졌는데 폭우가 쏟아지니까 집이 물에 잠길까봐 걱정돼서 밤을 지새웠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피해 소식이 연이어 퍼졌고 그 불안은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이날도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도로 곳곳이 물에 잠기고, 푸른 작물이 자라있어야 할 논은 온통 흙탕물로 뒤덮인 채였다. 미호강은 쉴 새 없이 불어나 표지판들은 물에 잠겼고 수위는 미호천교를 삼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17일 오후 청원구 북이면 화상2리 다목적체육관 대피소에 마련된 개별 텐트에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조은영기자

위기는 오송읍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잇따른 폭우에 청주시 전역이 위태로워지자 19개 마을에서 주민 133여 명이 긴급 대피해야 했다.

하천 범람 위험지역인 청원구 북이면 화상2리 주민들도 시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대피소로 몸을 옮겼다.

북이면 다목적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는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개별 텐트와 간단한 식음료, 구급상자 등이 갖춰져 있었다. 주민들에게 제공될 담요, 매트, 베개, 속옷 등이 담긴 응급구호 세트도 쉴 새 없이 채워지고 있었다.

화상리 주민 정지권씨(82)는 "오늘 아침 '대피소로 이동해야 하니 마을 입구로 모여 달라'는 이장님 말에 간단히 옷가지만 챙겨 아내와 함께 버스를 탔다"라며 "몸은 안전하게 대피했지만, 폭우로 키우던농작물과 특수작물들이 모두 빗물에 잠겨 죽어 마음이 편치 않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김정자씨(86)는 "다리가 아파 아침마다 요양병원에 다니는데 오늘은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아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며 "버스를 보내줘서 이렇게라도 왔지 아니었으면 정말 막막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옥산면 일대 논밭도 폭우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애호박 재배단지는 7ha 규모의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다행히 수확 시기가 거의 끝나 작물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침수로 인한 시설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청주를 비롯한 충북지역은 전날부터 쏟아진 폭우로 전역이 초긴장 상태다. 16일 자정부터 17일 오전 10시까지 청주의 누적 강수량은 청주 276㎜, 서청주 246.4㎜, 청주금천 243.5㎜에 달했다. 증평, 괴산, 진천, 음성 등 인근 지역도 180~230㎜의 비가 내렸다.

청주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는 피해 최소화를 위한 비상 대응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조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