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회복 본능, 치매 예방의 새로운 해답 '신경 가소성'
[건강칼럼] 조성래 유성선병원 심뇌혈관센터 센터장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치매는 더 이상 특정 연령대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력 저하와 판단력의 둔화로 일상생활이 점차 어려워지는 치매는 현재까지 완치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최근 의료계에서는 뇌의 회복과 적응 능력을 뜻하는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이 치매 대응의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신경 가소성이란 뇌가 새로운 자극이나 손상에 적응하며 스스로 구조를 바꾸고 기능을 회복하는 능력이다. 과거에는 뇌세포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살아남은 신경세포들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기능을 보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회복 메커니즘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일상에서의 꾸준한 뇌 자극이 중요하다. 독서, 악기 연주, 퍼즐과 같은 지적 활동은 뇌의 다양한 부위를 자극해 새로운 회로 형성을 유도한다. 또 유산소 운동은 뇌혈류를 촉진시켜 신경세포 생존과 연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균형 잡힌 식사와 더불어 사회적 교류도 신경 가소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다.
최근 약물 치료 역시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고 있다. 기존에는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를 통해 증상 완화를 시도했다면,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의 주된 병리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항체 치료제(레카네맙, 도나네맙 등)가 개발되어 질병 진행 자체를 늦추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비약물 치료 기술도 다양화되고 있다. rTMS(반복경두개자기자극술), tDCS(경두개직류자극술) 등 뇌 자극 기술은 뇌의 특정 영역을 직접 자극해 회로 활성화를 돕는다. 또한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을 이용한 인지훈련과 디지털 치료제, 뇌파·활동량을 모니터링하는 웨어러블 기기 등 디지털 기반의 비침습 치료가 가정에서도 가능해지며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결국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 저하가 아닌, 뇌 전체 기능의 점진적 소실이라는 복합적 문제다. 약물, 기기, 생활습관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뇌의 회복력을 자극하고 유지하는 것이 치료와 예방의 핵심이다.
신경 가소성은 뇌가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다. 조기 진단과 함께 생활 속에서 꾸준한 두뇌 자극을 실천한다면 치매의 진행을 늦추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뇌는 생각보다 더 강하다. 치매는 끝이 아니라, 관리를 통해 충분히 대응 가능한 질환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이 뇌를 바꾸는 첫 번째 치료법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