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빛으로 유전자 켜고 끄는 기술' 세계 첫 구현

'릴리저' 기술로 세포 내 분자 저장·방출 가능 생쥐 모델에서도 단백질 기능·mRNA 번역 조절 입증 차세대 뇌 연구·세포치료·정밀의학 활용 기대

2025-07-23     이한영 기자
▲ 인공 응축물 시스템(RELISR) 개요

세포 속 유전정보나 단백질을 빛으로 원하는 시점에 꺼내 쓰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현실화됐다. 

빛을 이용해 생체 분자를 저장하고 방출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플랫폼이 KAIST에서 개발되면서, 유전자 조절과 치료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 왼쪽부터 KAIST 생명과학과 이채연 박사, 허원도 교수

KAIST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은 물리학과 박용근 석좌교수 연구팀과의 협력을 통해 단백질과 mRNA를 세포 내 막 없는 응축체에 저장한 뒤, 광자극만으로 순간적으로 방출할 수 있는 새로운 생체조절 기술 '릴리저(RELISR, REversible Light-Induced Store and Release)'를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기존의 광유전학적 분자 응축 기술은 여러 생체 분자들이 무작위로 섞인 상태여서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반해 릴리저 기술은 특정 표적 분자만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생체 내 정확한 분자 제어를 가능하게 한다.

▲ 인공 응축물 시스템을 활용한 세포 모양 변화

연구팀은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표적 부위를 탑재한 광반응 단백질 복합체를 활용해 단백질과 mRNA를 세포 내 응축체에 안정적으로 저장한 뒤, 특정 파장의 빛을 쬐어 방출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기술은 다양한 세포주뿐 아니라 생쥐 신경세포 및 간 조직에서도 효과가 입증됐다. 단백질 릴리저(Protein-RELISR)는 세포의 형태 변화나 신경세포 내 단백질 활성을 실시간 조절하는 데 활용됐으며, mRNA 릴리저(mRNA-RELISR)는 생쥐 모델에서 mRNA 번역 시점을 빛으로 조절해 실제 적용 가능성을 보여줬다.

▲ 생쥐 내에서 인공 응축물 시스템(RELISR)을 활용한 표적 mRNA의 발현

이는 단백질이나 유전정보를 '가두기만' 했던 기존 기술(LARIAT)을 뛰어넘어, 동일한 광자극으로 실시간 방출까지 가능하게 만든 획기적인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허원도 석좌교수는 "릴리저는 특정 분자를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범용 광유전학 도구"라며 "뇌 연구, 세포 치료, 차세대 신약 개발은 물론, 향후 유전자 가위나 바이러스 전달체(AAV) 기술과 융합해 정밀 의료로 확장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이채연 박사(당시 학생, 제1저자)가 주도했고, 박용근 석좌교수와 유다슬이 박사(공동 교신저자)는 세포 내부에서 발생하는 생물리학적 반응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기여했다. 연구 성과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2025년 7월 7일 자로 게재됐다.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과 한국연구재단 유전자편집·제어·복원기반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KAIST는 이번 성과를 기반으로 국내 생명과학·의학 분야의 기술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전=이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