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계절

2025-08-03     충청일보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마른장마로 물기 잃은 세상은 달구어지기만 했다. 어찌나 뜨거운지 잠시 노상에 세워 두었던 자동차로 들어가 앉는 것도 고역이고 핸들은 선뜻 잡지 못한다. 에어컨을 켜자 훅하고 바람이 지나가는데 그마저도 용광로이다. 여름을 즐기기는커녕 견뎌낼 수 있을까 싶었다.

지독한 낮의 시간이 지나고 어둑해져도 공기는 펄펄 끓고 있었다. 그 폭염 속에서 악마의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천둥과 번개가 어우러져 지옥을 만들어 내었다. 하필이면 저녁 근무라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며 퇴근길에 올랐다. 가로등이 켜져 있어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설상가상 비마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리던 비이던가. 하지만 공포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무섬증이 온몸을 휘감는다.

가만히 보면 모두에게 공평한 환경은 없는 것 같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타들어 가는 나무며 동물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 물이 넘쳐나서 매해 수해를 입는 지역까지 누구 하나 완벽하게 만족할 수 없다. 그럼 에도 사람인지라 당사자에게만 어려움이 밀려오는 듯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열심히 살아내는데 끝나지 않는 어둠으로 지치기도 한다.

창조주는 햇살을 골고루 쬐어 주려 해도 큰 나무 아래 얼결에 자리 잡은 잡초는 기력이 없어 희끄무레하게 시들어 간다. 어쩌다 보니 내 모습과 닮았다. 시민을 위한 좋은 정책이 나와도 이 사람이 서 있는 자리만 피해서 가니 서럽기만 하다. 한두 번 그랬던 것도 아니기에 우연이겠지 싶다가는 의도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런 날은 근면 성실하게 살아내느라 열심이었던 순간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내 인생의 여름은 요즘 날씨만큼 혹독했었다. 아무리 푹푹찌는 날씨에도, 하늘이 구멍이 난 것 같은 지독한 장마에도 그저 버텨내야만 했다.

볕을 쬐지 못하고 그리고 스스로 살아내려 무던히도 애쓰다 이도 저도 되지 않아 어둠속으로 들어가고 결국은 세상을 탓하다 보면 수렁 속에 빠진다. 얼마 전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한 가족이 생을 달리한 채 수개월 동안 방치된 뉴스가 있었다. 용기 내어 세상과 소통했더라면, 이웃의 온정과 복지정책의 그늘막이 드리워졌더라면, 그런 일이 없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조금 더 어려운 이들을 먼저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가뭄이 들기 전에 비를 내리고 햇빛이 뜨겁기 전에 구름을 풀어주고 온통 얼음의 세상이 되기 전에 온기를 뿌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세심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손을 내밀다 보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씨도 신기록을 갱신한다는 일기예보다. 한낮이 되기 전 마음 밭을 빗자루질로 빗살무늬를 그려놓는다. 섬세하게 혹은 열정을 다해 살아내는 하루가 모이면 한 계절이 된다. 마당 가에 꽃도 피고 바람은 한들거린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위대한 계절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