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다이어리
[충청광장]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부고가 왔다. 시인의 모친상이었다. 빈소는 청주성모병원이었다. 평소 형님 아우로 가까운 사이였기에 서울에서 청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요일 오후 고속버스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버스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고속도로를 30분쯤 달렸나보다. 뭔가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음악소리를 뚫고 계속 들려왔다. 이어폰을 빼니 정말 큰 소리로 들렸다.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좀 있으니 기사님이 버스를 갓길에 대었다.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고 기사님이 승객들에게 안내를 했다. 버스 타이어가 펑크났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정말 죄송하다고.
기사님은 이곳저곳에 통화를 했다. 승객 중에 청주공항으로 가는 승객을 먼저 파악했다. 네 명이 공항으로 가는 승객이었다. 뒤따라오는 회사 버스에 딱 네 명의 자리가 비어있으니 공항 승객부터 태우자고 했다. 비행기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버스는 아주 느린 속도로 조금 더 가서 졸음쉼터에서 정차한 후 뒤따라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승객 몇몇은 내려서 담배를 태웠다. 기사님은 계속 어딘가로 통화를 했다. 한 승객은 그럼 우리는 계속 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냐고, 우리도 다 바쁜 사람들이라고 따져 물었다. 기사님은 어떻게든 천안휴게소까지 가서 다른 빈차로 바꿔 타고 갈 거라고 했다. 또 다른 승객은 지금 중요한 계약건으로 늦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기사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서서 가더라도 뒷버스를 타게끔 해달라고 요청했다. 잠에서 깬 꼬마 아이는 연신 엄마를 부르며 칭얼댔다. 앞쪽의 승객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건너편의 청년은 이 와중에도 천연스레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뒷 버스가 도착하여 공항 가는 승객은 먼저 탔다. 좀 있으니 기사님이 버스가 하나 더 오는데 바쁘신 분들은 그 버스를 타라고 했다. 곧이어 버스가 왔다. 다섯 명 자리가 비어있고 선착순으로 태운다고 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필자도 비를 맞으며 선착순 다섯 명에 들기 위해 줄을 섰다.
결국 나는 선착순에 들어 다음 버스를 탔다. 아마도 나머지 승객은 펑크난 버스를 타고 천안까지 가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종착지까지 갔을 것이다. 버스를 탄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무엇이 나를 그렇게 급하게 했을까 생각했다. 산다는 건 늘 쫓기듯 달려야 하는 것일까.
빈소에서 나의 버스 펑크 에피소드는 단연 화제였다. 늦게까지 빈소에 앉아 “오늘은 평생 기억에 남겠네” 라고 모두들 얘기했다. 시인의 어머니는 88세에 이생과 이별하고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젊은 시절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셔서 손가락 마디가 다 굽었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생과 이별하고 평안한 천국의 생을 맞이했으리라. 도착시간은 달라도 종착역은 누구나 같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각자의 사정대로 우리는 종착역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