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禍) 복(福)이 찾아오는데는 정해진 입구가 없다

2025-08-17     충청일보

[충청산책] 김법혜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전 여담에 화복무문 유인 자초 라는 말이 있다. 재앙 화(禍),복 복(福), 없을 무(無), 문 문(門), 오로지 유(惟), 사람인(人), 스스로 자(自), 부를 초(招)자를 쓴다. 한 마디로 매사에 화나 복이 찾아오는 데는 정해진 입구가 없으며, 오로지 사람이 그것을 불러들일 따름이다’ 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를 기록한 역사서인 ‘춘추 좌전’ 양공 23년 조에 나온다. ‘회남자’ 의 ‘화와 복은 문이 같다’(禍福同門·화복동문), ‘맹자’의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등 비슷한 표현이 많다. ‘자작지얼’은 스스로 지은 재앙이란 뜻이다.

‘회남자’는 전한 회남왕 유안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며, 맹자는 유가의 경전인 사서삼경 중 하나다. 명심보감 계선편에서도 화복무문 유인자초 선악지보 여영수형 기유증행악사 후자개회 구구필획길경 소위전화위복야라는 말이 있다. ‘재앙과 복은 문이 따로 없고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부른 것이다. 선과 악의 응보는 그림자가 형상의 뒤를 따르는 것과 같다.

나쁜 짓을 했더라도 스스로 고치고 뉘우치면, 오랫동안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전화위복이다’ 라는 뜻이다. 화와 복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자기 책임이며 스스로 불러 들인 것(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하는 것은 운명론을 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엄격함이 있다.

우리 속담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 했다. 대체로 재앙은 과도한 욕심이나 언행에서 비롯된다. 분수에 넘치는 욕심, 능력을 넘어서는 호기, 거리낄 게 없고 함부로인 언행 등이 스스로를 망친다. 특히 영향력이 큰 국가간 권력자가 이런 유형이면 국가마저 망가뜨리게 된다.

국민들을 울분케 하는 ‘휴전선 주변의 확성기 방송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구절이다. 북한이 지난 9일부터 전방 일부 지역에서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이 우리 군에 포착됐다고 발표했다.이것이 사실아라면 우리가 먼저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한 데 대한 화답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난 6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도 단 8시간 만에 대남 소음방송을 멈추는 등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이를 보면 언뜻 단절된 남북관계 개선의 신호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이 2023년 4월 남북 연락채널을 일방적으로 끊은 이후 철저하게 남한 무시전략을 유지해오는 와중에 그랬으니 긍정적 변화의 기류로 읽힐 수도 있다.

더군다나 북한이 '북침연습'이라며 미사일 도발을 일삼았던 정례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계획이 지난 7일 발표된 이후 철거(?)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본격적인 남북대화 복원 등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진전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우리의 잇따른 대북 유화정책에도 담화를 통해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며 "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했다. 남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다.

남녀 간 연애도 서로가 반응해야 잘되는데 상대가 꿈쩍 않으니 일이 진전될 리 만무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김정은이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고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면서 북한을 수차례 '핵보유국'으로 불러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고리로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할 태세다. 김정은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북미대화를 통한 핵 군축 또는 동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은 미국의 반대로 쉽지 않다. 이 와중에 북한과 러시아는 무기와 군사기술을 주고받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 고도화 달성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엄청난 위협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긴 호흡으로 대북문제를 고차방정식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오판을 막고 실질적으로 남북 관계가 해빙 무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전 여담의 화복무문 유자초라는 말처럼 매사에 화나 복이 찾아오는 데는 정해진 입구가 없으며, 오로지 사람의  노력으로 그것을 불러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