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는 일은 남녀가 따로 없다

2025-08-31     충청일보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 ·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삼국사기의 신라 본기에는 신라 진흥왕 37년(576년) 미모의 여성을 리더로 하는 원화제도가 도입돼 군의 인재 선발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화는 시작부터 준정과 남모, 두 여성 지휘관의 다툼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능력과 관계없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기준만으로 선발되었던 탓에 시기· 질투와 이간질이 빈번했고, 결국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이 나게 된다.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는 강물에 던져 죽인 것이다. 진흥왕은 준정을 사형에 처하고 원화제도를 없앴다. 대신 남성을 리더로 뽑아 지휘관으로 양성토록 했는데, 그들이 바로 화랑이다. 그 이후 신라시대 이후 여성이 지휘관, 또는 정규군이 됐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의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여성들이 생각할 때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여성이 전선에 나가 싸운 사례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세 침략과 내전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이었다. 그것도 전투가 아니라 부상병 간호와 취사 등 지원 업무에 국한했다.

한국전쟁(6·25)은 여성이 전투에 출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정부는 여성의 자원입대 요구가 거세게 일자 1950년 8월 '여자 의용군' 1기생 500명을 선발했다. 의용군 교육대가 문을 연 그해 9월 6일은 훗날 여군 창설기념일이 됐다. 교육을 마친 이들은 바로 전선에 투입돼 목숨을 걸고 인민군과 싸웠다.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해병대는 반격 작전을 위해 병사 3천여명을 모집했는데, 그중 126명이 여자 의용군이었다.

여군 창설 75주년을 앞두고 최근 여성 국회의원이 여성도 현역병으로 입대할 수 있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고 나서 관심을 끌었다. 여성의 자발적 복무 확대를 위한 법안이라고 하지만, 인구절벽을 앞두고 "여자도 군에 가야 한다" 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여성 징병제 논의로 나아갈 가능성도 크다.

물론 병력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반드시 군대가 강해진다는 법이 없다. 군대 갈 남성이 부족해 여성 징병으로 채워야 한다면, 그것은 병력 운용의 효율성을 전제로 두고 추진해야 한다. 남자가 군대 가니 여자도 군대 가란 식의 접근은 유치하고 위험하다. 여성과 남성이 가진 고유의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여성이 가진 장점들을 군대에 접목시켜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한다면 여성의 군대 입대는 여성이 또 다른 사회 참여를 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현역 복무는 남성뿐 아니라 일부 여성들이 내심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자원 입대를 유도하기 위해선 다양한 혜택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 군사 정보와 감찰, 비전투병 보충과 배치, 제대 후 경찰· 소방· 교정직 공무원으로의 채용 우대, 아파트 청약 가점, 군 면세 마트(PX) 이용 등이 그것이다.

군의 병력 절벽 사태가 앞으로 5년 안에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다고 한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바로 저출산에 따른 병역 자원의 급감이다. 저출산은 서서히, 아주 확실히 자주 국방력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려 10개 사단 병력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미래 전쟁은 로봇이 동원되고 AI 기술력이 총 동원되는 하이테크전이라고 예측해도 적정 병력은 보유해야 전선을 방어할 수 있다는 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전 같은 세계 국지전에서 입증하고 있다.

문제는 20세 남성 인구는 지난해 25만 명에서 2040년엔 14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야말로 병력절벽 사태다. 이에 대처하려면 복무 기간 조정, 첨단기술 활용, 군 처우 개선 등 다양한 방안이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논의를 시작해야 할 이슈가 여성 징병제다.

내 나라와 후손에게 물려 줄 유산을 지키는데 여성, 남성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노르웨이는 2016년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한 유럽 최초의 국가인데, 징병 대상자의 10~15%를 선발하는 선별적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후 스웨덴· 덴마크도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현대사회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강조하기 보다 유니섹스(Unisex)가 각광받는 시대이다. 이제는 남성의 전유물이나 여성의 전유물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그 역할도 뚜렷한 구분이 사라져 가고 있다. 국방 안보 분야 또한 성별과 무관하게 다양한 사람들이 군대에 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그 후속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병력자원의 감소는 단 기간에 해결 하기 어려운 큰 과제이다. 여성의 자발적인 복무 참여 기회를 넓히고, 성별과 무관하게 다양한 인재가 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내 나라와 국토를 지키는데 남성이 따로 있고, 여성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