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2025-09-01     충청일보

[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지난 26일 예상을 뒤엎고 국민의힘 당 대표로 장동혁 의원이 선출되었다. 조경태, 김문수 후보보다 뒤처진 상태에서 출발했기에 승리를 예상하기 힘들었다. 친한계였지만 탄핵을 반대하며 대표적인 ‘반탄(反彈)’파로 분류되었다. 특히 전한길씨 유튜브 출연 등 극우 프레임 논란을 일으키며 최근 극우 정치 성향을 보였다. 전통 보수 언론조차 그의 당대표 선출을 우려했다.

이보다 앞서 대표적인 막말 정치인으로 국회 활동중 고압적 태도와 모욕적 언행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품격을 깎아내렸다고 평가받는 정청래 의원이 민주당 당대표가 되었다. 이로써 여야(與野)의 당대표 대진표가 완성되었다.

‘뭐, 막상막하!’, ‘제대로 한판’ 이런 수식적 표현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 민주당 지지자는 정청래 대표가 당선되자 ‘우리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라 하고, 장동혁 대표가 당선되던 날 어느 국민의 힘 지지자 그룹은 ‘앞으로 우리 모임 앞에 ‘보수’라는 단어 쓰지말자’라고 한다.

‘미친 민주주의 현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두고 어느 정치학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집단적 의사결정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 시스템을 의미하며, 정부가 피지배자의 동의에서 정당성을 도출하고, 권위가 시민의 의지를 반영할 때만 정당화 되도록 보장한다. 이를 위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포용적 참정권, 표현의 자유, 대체 정보 보장, 조직의 자율성과 같은 제도적 보장을 갖춘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민의 자유, 법앞의 평등, 소수자 권리 존중 등 절차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시민 의사결정의 자질(資質)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정청래대표와 장동혁대표의 어록을 보면, 칼만 안 들었지, 서로 난도(亂刀)질하는 것만 같다. 양당 대표가 서로 행동을 차단하며 의회 의사결정 자체가 정지된 교착상태(Democracy Gridlock)에 빠졌다. 거대 야당(野黨) 구조의 여야(與野)간 첨예한 대립 속 윤석열 정부와 ‘숙청(purge)’의 이재명 정부 모두 비효율적인 행정 수렁(Democracy Mire)에 놓였다.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 난기류 속 민주주의(Democracy in Distemper)는 정상이 작동하지 않는, 마치 질병에 걸린 듯 고통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입법부->집행부->사법부 수직화 구조는 확인되었다. 협치는 온데간데없이 대치와 갈등만 남았고, 협상 없이 서로 싸우기만 하다가 정치가 사법적 판단에 의지하게 되는 로페어(Lawfare) 상태에 놓였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군부의 끝자락 1987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집회 시위는 11,370회였지만,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집회는 95,266회, 윤석열 정부 2023년에도 79,395회나 있었다. 집회나 시위로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심지어 결실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과잉민주주의’의 현실이라고도 한다.

2016년부터 줄곧 제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20대 득표율 비례 25.5%, 지역구 31.3%로 41%의 의석수를 차지했고, 21대 득표율 비례 33.4%, 지역구 33.35%로 의석수 60%를 차지했으며, 22대에도 이어졌다. 선거의 불비례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단지 30~40%의 지지율만으로도 의회와 정부를 장악하는 승자 독식 상태에 놓이는 구조다.

민주주의가 합법적이고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종식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은 역사에서 확인된다. 나치당을 통해 권력을 잡은 뒤 히틀러 독재로 이어진 전범(戰犯) ‘바이마르 공화국’의 끝을 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지금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