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가 변하고 있다

2025-09-08     충청일보

[충청칼럼] 윤명혁 S&T농업비즈니스컨설팅 대표 

옛날 중국 사람들은 천문학 지식을 이용해 태양의 황경이 0도인 날을 춘분(春分)으로 하고 15도 간격으로 하나씩 24개로 나누어 태양이 각 점을 지나는 시기로 24절기를 만들었다.

이때 24절기의 명칭은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후를 바탕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기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예로부터 이 24절기를 토대로 농사일은 물론 모든 삶의 이정표처럼 활용해 왔다.

첫 번째 절기인 춘분에는 봄이 시작인 것을 알았고 청명이 되면 봄 농사를 준비하였으며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를 지나고 무더위가 심한 수서, 대서를 지나면 가을이 오고 서리가 온다는 상강을 지나 입동으로 겨울이 온다는 것을 예측하면서 겨울나기를 준비한 것이다. 소한, 대한 추위를 이겨내고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다시 희망의 입춘을 맞이하는 굴레를 계속하면서 한해 한해를 살아왔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의 이정표처럼 쓰여왔던 24절기가 이제는 많은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지난 24절기가 처서(處暑)인데 處(처할처) + 暑(더위서)로 더위가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면서 하늘이 파랗고 곡식들이 잘 익어가는 계절로 바뀐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처서가 지나도 폭염은 계속된다는 기상예보를 접하면서 처서의 최면이 말이 아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처서가 지나고 장맛비가 내리는 일이 번번하여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서뿐만이 아니다. 옛말에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24절기 중 소한이 가장 추운 절기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소한에 마치 장마진 것과 같이 비가 내려는가 하면 겨울에 눈이 내리는 장면을 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봄이 빨리 오면서 꽃이 피는 시기가 당겨지고 거기에 따른 과수 꽃눈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과수 산업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과 주생산지역인 경북 청송, 안동, 문경, 영주지역에서 봄철 저온 피해로 인해 사과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사과 1개에 7~ 8천 원 하는 금 사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미 사과의 재배 적지는 강원도가 되었으니 경상북도 지역의 사과나무가 행복하게 잘 살면서 과일을 제대로 열리는 환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 국가기관인 산림청이 제정하여 운영하는 식목일을 보자. 식목일은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신라 문무왕의 삼국통일과 조선시대 성종의 친경일 등 역사적, 계절적 의미를 반영하여 4월 5일로 정하고 산림자원 확보를 위한 나무 심기를 장려하기 위해 제정했다고 한다.

당시는 4월 5일이 나무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시기로 나무를 심으면 토양에 활착하기 쉬운 시기를 잡아서 식목일로 제정하고 전 국민이 나무를 심도록 권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77년이 지난 지금은 4월 5일이 되면 이미 겨울을 보낸 나무들은 파란 잎을 무성하게 피우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시대가 지나면서 봄이 빨리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산림청은 식목일을 다시 제정해야 하지만 이렇다 할 방도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실제로 2021년 한국 갤럽을 통해 국민 여론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인 56%가 3월로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농사에도 크게 반영되고 있는데 봄이 일찍 오고 늦게까지 춥지 않은 기후가 계속되면서 아열대 작물 재배가 늘어나고 있다. 모를 심는 시기도 점점 늦어지면서 5월 20일에서 30일 사이에서 6월 10일~15일로 늦어지고 있다.

이렇게 정식을 하는 작목들은 재배 작기를 조정할 수 있으나 과수의 경우는 자연의 섭리대로 맡기다 보니 이른 봄 일찍 기온이 높아지면서 꽃눈이 일찍 개화되고 이에 따른 저온 피해가 심해지면서 더 많은 어려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농업인들은 이제껏 24절기는 계절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로 농사에도 많이 활용되어왔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이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입춘(立春)은 봄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이미 봄은 우리 곁에 와있고 6월 5일경의 망종(芒種)은 씨뿌리는 적기로 판단하였으나 현재는 이때면 이미 밭에 씨를 심고 모종을 정식을 마친 때이기에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11월 7일경의 입동(立冬) 역시 겨울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요즘의 겨울은 12월이 다 되어야 첫눈이 올 정도로 절기가 늦어지고 있기에 그 옛날 중국에서 지정한 24절기는 이미 지금의 기후와는 맞지 않은 자료가 되어 이를 기준을 농사에 활용하기는 너무나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는 자칫 보수적인 농업인들에게는 많은 실수를 범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에 기후 변화에 대응한 작목별 재배지도와 농사 월력을 만들어 농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